카페 디바의 귀환

Viva Diva!

by 뮌헨의 마리


카페 디바의 주인장이 돌아왔다. 카페가 문을 닫은 지 1달반만이었다. 카페가 다시 문을 열기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늘은 토요일. 아이를 한글학교에 보내고 디바로 향했다. 9월의 문학모임도 디바가 문을 닫는 바람에 장소를 바꿔 시내에서 했다. 노아가 한글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노아 엄마와 두 번이나 한글학교 근처에서 차를 마셨는데, 그때도 디바까지 걸어왔다가 발길을 돌렸다. 분위기도 없고, 멋없이 크기만 하고, 소리는 또 얼마나 울리는지 앉아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학교 바로 앞 카페 블루로.


아직 문이 열리지도 않은 카페 디바 앞에서 책을 읽으며 무작정 기다리자 어느 덧 주인장이 나타나 인사를 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 같은 충성 고객도 많지 않을 것이다. 혹시 이대로 문을 닫는 게 아닌가 싶어 여름 내내 내가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토요일 오전을 글을 쓰며 보낼 카페로 디바만큼 편한 곳을 알지 못한다. 추운 겨울 뮌헨에 와서 마음을 준 첫 카페라 그럴 것이다. 첫 정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찾아보면 이런 카페가 왜 더 없겠나. 내 마음이 이곳을 지나치게 편애할 뿐.


주인장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고국이 이란인 중년 남자. 아니나 다를까 이란에 다녀왔단다. 85세 어머니가 아프시단다. 남동생도 뇌수술을 받았다고. 수술 이후가 더 걱정이라며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했다. 나 역시 그런 친구가 있어 남 얘기 같 않았다. 그의 어머니 얘기를 들을 땐 친정 엄마의 10년 후를 생각했다. 그에게 위로를 전한 뒤 카페 내부를 둘러보니 벽면 사진들이 달라져 있었다. 이란 풍경 대신 옥토버 페스트. 괜히 애잔한 기분이 되었다.




어제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우리 남편 삼촌의 장례식이었다. 평일에다 장지가 프랑크푸르트라 아이와 나는 못 가고 남편과 형과 누나와 새어머니만 가셨다. 삼촌의 연세는 85세. 2년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도 85세셨다. 삼촌은 찬바람 불어오는 9월에, 우리 시아버지는 7월에 돌아가셨다. 몇 년 전 숙모가 돌아가시자 사촌 다니엘라가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돌봤다. 다행히 주무시듯 편안히 가셨단다. 우리 시아버지도 그랬다. 성정이 온화하신 분들답게 마지막까지 조용히 떠나셨다. 그나저나 얼마 전 남자 친구마저 떠나보낸 다니엘라가 걱정이다. 잘 견뎌주면 좋겠다.


오늘은 옥토버 페스트의 두 번째 주말이다. 1주일을 남기고 있는 옥토버 페스트. 지난주에 보니 뮌헨 사람들의 던들 드레스 사랑이 장난이 아니었다.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외출할 때도, 출근길에도, 심지어 학교에도 입고 왔다. 옥토버 페스트 내내 입을 작정인가 보다. 디자인도 색상도 얼마나 다양한지 보는 눈이 즐겁다. 겨울 축제나 행사 때부터 보이더니 옥토버 페스트는 던들 페스트라 불러도 될 정도로 절정을 이룬다. 마치 사람들 사이에 단풍이 든 것 같다. 날씬한 사람뿐만 아니라 넉넉한 체형까지 다 커버하는 게 또한 던들의 미덕.


아침에는 흐려서 무척 쌀쌀하던 날씨가 오전에 해가 나오자 단박에 풍경이 달라졌다. 오, 해야 제발 나와라! 이러다 조만간 남자보다 해를 더 아쉬워하는 시누이 바바라의 심정을 이해할 판이다. 그런들 어떠랴. 나에겐 카페 디바가 있는데. 언제 봐도 안심이 되는 주황색 샹들리에. 겨울에 보면 더 반가운 저 불빛이 꺼지는 일이 없기를. 글 100편을 썼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의 글쓰기다. 매일매일 쓰는 게 내 일이라면, 매일 문을 여는 건 디바의 일. 힘내라 디바! Viva D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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