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디바에 앉아 위로를 들었네
Cafe Diva
카페 디바에서 첫 편지를 썼다.
카페 디바에서 첫 편지를 썼다. 2월의 첫째 토요일. 아이에게는 한글학교 첫 등교날이었다. 설날 행사가 있으니 아이를 데리고 견학을 와도 좋다는 교감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아이보다 내가 더 기뻤다. 겨울의 뮌헨은 갈 데가 많지 않았다. 어디라도 마음 둘 데가 필요했다.
아이를 교실에 들여보내고 학교 앞과 지하철 부근을 둘러보았다. 토요일 오전이라 문을 연 곳이 별로 없나. 초행이라 내가 못 찾는 걸까. 내게는 글을 쓸 곳이 간절했다. 앞으로의 긴 시간을 버텨 줄 곳. 토요일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쓸 카페가.
운이 좋았다. 그보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카페였다. 곰살맞지도 쌀쌀맞지도 않은 무덤덤한 중년의 남자 주인장도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호박색 조명과 벽 쪽의 창가. 부드러운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의 향기. 듣기 좋은 독일 라디오까지.
창밖은 스산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가로수들의 맨몸과 문 닫은 가게들. 주말이라 드문드문 지나는 차량 몇 대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슬픔은 숭고한 것. 당시 읽고 있던 나니아 연대기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선생님이 집안 일로 힘드실 때였다. 조카가 어려움을 당했다. 가장인 조카도 조카지만, 삼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조카 손녀의 상심한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더 힘들었다.
독일에 오자마자 선생님이 선물하신 나니아 연대기를 아이와 함께 읽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었다. 아이에게도 내게도 나니아 언덕에 기대어 이월부터 부활절까지 견뎠다. 저녁마다 침대 옆에 밝은 등을 켜고 엄마와 떠나는 나니아 여행에 아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독일로 떠나와 익숙하고 편안하던 공간과 분리되는 경험은 쉽지 않았다. 갑자기는 아니라 해도.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갑작스럽다. 떠나기 전까지는 실감도 나지 않는다.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30대만 해도 왜 한국에서 살아야 해? 그런 주의자였다. 40대를 한국에서 보낸 탓도 있을 것이다. 시기도 그랬다. 1월은 떠나기 좋은 계절이 아니었다. 그런 계절이 따로 정해져 있기야 하겠냐만. 어딜 가도 몸이 추웠다. 봄이 오니 살 만했다. 초록빛이 위로가 되었다.
카페 디바에서 6월까지 스물두 번의 편지를 썼다. 그동안 선생님도 나도 안정을 되찾았다. 휴전선에서는 남과 북이, 싱가포르에서는 북미 회담이, 한국에서는 지방 선거가 열렸다. 독일에서는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매일 글을 쓰고 편지를 썼다. 글쓰기가 지루해져서 시로 넘어갈까 고민하다 산문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 사이 문학 모임 멤버들을 만나 조율을 마쳤다. 모국어로 수다를 떨며 알게 되었다. 모국어도 위로였다.
카페 주인장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카페 벽에는 이란의 풍경과 함께 기타도 두어 개 걸려 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장이 이란 사람이었다. 레겐스부르크에서 5년인가 7년을 살다 뮌헨으로 왔다고 했다. 나 보고도 뮌헨으로 오길 잘했다고. 레겐스부르크는 작아서 답답했다고.
어느 날은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가 <Sway>를 들었다. 노래는 위로다. 쓸쓸한 멜로디를 Peter Cincotti라는 남자 목소리로 듣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 즐겨 들은 건 Diana krall 버전의 허스키한 <Sway>였다.
노래를 듣는 동안 한국의 가을이 생각났다. 한국의 겨울도 좋았다. 햇볕 쨍쨍한 겨울날은 걷기에 얼마나 좋던가. 가을부터 겨울 지나 이듬해 봄까지 선생님과 추운 줄도 모르고 하얀 입김 내뿜으며 걷던 여의도의 샛강 산책길. 선생님의 전동 휠체어는 늘 나보다 빨랐다.
아무렇지도 않던 날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날들. 갑자기 생각나서, 갑자기 시간이 남아서 나올래? 물으시면 네, 하고 어디라도 달려가던 그때. 아이도 긴 산책길을 잘 따라와 주었다. 평온하고 아름다웠던 시간들. 벚꽃 지던 여의도에서 아이가 머리에 사서 꽂았던 특별할 것도 없는데 자꾸 눈길이 가던 벚꽃 화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