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할머니는 후회하실 것이다

호텔 25

by 뮌헨의 마리


미나와 둘이서 주방과 홀을 신들린 듯 오가며 손님 40명을 커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도 그런 날조차 '수고했다. 애썼다. 고맙다'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말로 덕을 쌓기가 그리도 어려운가. 꼭 한 가지 트집을 잡아서 우리 속을 뒤집어 놓으시는 호텔 주인 할머니.


비 온 후 잠깐 해가 나올 때 프라우엔 성당



토요일 저녁 호텔 주인 할머니 딸인 니콜의 메시지를 받았다. '내일 손님 15명. 원하면 쉬어도 됨.' 오호라! 어떤 사연인지 단번에 짐작이 갔다. 분명 미나 때문이겠지? '나도 그만두겠음!' 그것이 토요일 오후 내가 퇴근한 후에 미나가 호텔에 투하한 폭탄이었다. 호텔 측의 반응은? 놀랐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출근일에 나보고 쉬라고 할 리가 있나. 그것도 저녁 무렵에. 나도 미나의 전화를 받고 놀랐는데. 미나를 한번 설득해 보려는 것 같았다. 어려울 것이다.




지난주는 죽을 맛이었다. 결혼식 하객 손님들이 며칠간 호텔에 단체로 머물렀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서로 아는 사이라 한번 앉으면 일어설 줄을 몰랐다. 그 사이 그들과는 상관이 없는 손님들이 단체객들의 소란함과 우리들 종업원들의 분주함 사이에서 고생을 했다. 커피와 음식이 부족한 건 다시 채우면 되니 그렇다 쳐도 도대체 빈자리가 나야 말이지. 자리 배정을 받지 못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손님들은 속이 상하고, 우리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 와중에 호텔 주인 할머니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쳐내고 쳐내도 줄지 않는 인원에 기진맥진한 순간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시는 솜씨라니. 과연 고수의 한 수는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날 마지막까지 기다려도 열 명 정도의 손님이 아침식사를 오지 않았다. 빵도 음료도 커피도 당연히 남았다. 정신없이 설거지 신공 중인 내게 할머니가 한 말. '너 여기 기계들이 얼마나 비싼 줄 아니? 매일 커피를 3리터씩 버리면 어떡하니?' 하이고. 정말! '매일 3리터씩 남다니요. 그런 적 없습니다.' 할머니는 당연히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집 발코니에서도 보이는 마리아힐프 성당 꼭대기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동안 할머니의 언행은 수위를 넘은 적이 많았다. 미나와 둘이서 주방과 홀을 신들린 듯 오가며 손님 40명을 커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도 그런 날조차 '수고했다. 애썼다. 고맙다.'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말로 덕을 쌓기가 그리도 어려운가. 꼭 한 가지 트집을 잡아서 우리 속을 뒤집어 놓으시는 호텔 주인 할머니. 예를 들면 이렇다. 그런 날은 할머니가 설거지를 자주 하시는데 우리가 개수대에 넣어놓은 접시를 닦다가 나를 불러 세워 닦달할 때. '누가 접시 깨끗이 안 털고 빵 부스러기를 개수대에다 부어 넣었냐? 너냐, 미나냐!'


요구르트를 보충하러 홀에서 요구르트 쟁반을 들고 온 것을 보고 또 한 마디 안 하면 할머니가 아니다. '누가 이렇게 똑같은 요구르트만 잔뜩 넣었니. 너니, 미나니?' 하, 진짜! 지금 그걸 따질 때냐고! 나는 물론 모르쇠로 일관한다. 할머니의 갑질 최악은 빵이었다. 리스트에도 빠진 손님들이 계속 오면 당연히 빵이 모자란다. 빵과 크라상을 굽는 나에게 할머니 왈. ' 너 이 오븐 전기세가 얼마나 비싼 줄 아니?' 아니,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손님들은 오고, 빵은 모자라서 굽는 건데? 미나에게 빵집 가서 빵을 사 오란다. 헐! 이것은 100% 실화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미나는 예사롭게 빵을 사 오더라는.



비 오다 잠깐 해가 날 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금요일 저녁 시어머니 댁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호텔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용건은 '냉동실에 흰 빵이 떨어졌음. 내일 아침에 미나가 오면 사 오라고 할 것.' 내 마음이 그렇나. 미나가 동네 북인가. 추위는 또 얼마나 많이 타는 친군데. '제가 아침에 사가겠음.' 다음날 할머니는 까맣게 잊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빵값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6개를 사 오랬는데 혹시나 하고 10개를 샀다. 몇 개가 남았기에 내가 사 온 빵이라서 남은 빵을 가져가겠다 하자 할머니 딸은 말귀를 못 알아들었는지, 전후사정을 몰라서 그러는지, 고맙다는 말은커녕 자기 먹을 빵 하나는 남기고 가져가란다. 그날 결심했다. 이런 호텔에서는 오래 일하지 말아야지. 단 한 가지, 미나가 마음에 걸렸다.




미나에게는 구직한다는 말을 안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새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 하자 자기도 꼭 데려가 달라는데 어쩌나. 혼자만 빠져나가기 미안해서 알겠다 했으나 미나의 독일어가 부족해서 나와 함께 옮겨가지는 못했다. 얼마 전 미나가 말했다. 새 호텔을 구했노라고. 세상에! 월급도 여기보다 낫고, 일도 여기보다 적고, 무엇보다 호텔 주인 부부가 여기보다 훨씬 인간적이더라고. 그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드디어 해냈구나! 그동안 독일어 못한다고 할머니께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데. 일은 일대로 혼자서 다하고. 둘이 한꺼번에 빠지는 게 도리가 아니란 건 안다. 그러나 호텔 사정은 사정이고 미나도 살아야지. 그래서 시작된 미나의 인권 선언은 to be continued..



호텔 앞 마리아힐프 성당과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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