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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Sep 09. 2023

정성이 담긴 오르골 소리

오르골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빈티지한 외관에 끌렸다. 가장 처음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눈 내리는 풍경 속에 팝콘 가게가 있는 오르골이었다. 소장 욕구가 가득해져서 열심히 찾다 보니 눈 내리는 마을, 크리스마스 기차, 원목 놀이동산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그렇게 신비로운 오르골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에 친구 생일이 찾아왔다. 친구에게도 이 세계를 전해주고 싶어, 또 열심히 검색해서 오르골을 선물해 주었다. 그때 샀던 것은 작은 상자에 예쁜 풍경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직접 손잡이를 돌려 수동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방식이었는데, 손잡이 옆에 쓰여있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멜로디가 흐르는 동안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세요.
지난 일과 내일은 접어두고,
‘지금’만 곁에 두세요.




한적한 지역 살이를 하다가 대학생 때부터 시작한 서울 생활은 매일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기분이었다. 패션 전공을 하다 보니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선배들, 동기들을 매일 보았다. 그 속에서 촌스러워 보이지 않으려 열심히 옷을 사고 겉모습을 가꾸었지만 늘 역부족인 것 같았다. 화려하고 빠른 도시에 적응하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어려웠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에 만난 오르골은 나에게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오르골의 겉모습은 여러 오브제가 있는 화려한 것도 있고 단순한 것도 있지만, 대표적인 특징은 한 음으로 연주한다는 것이다. 수동 오르골의 경우 직접 태엽을 감거나 손잡이를 돌려야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번거롭고 오래 들을 수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소리가 들리면 그 시간만큼은 그 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 소리는 조심스럽고 정성스럽다. 정성이 담긴 오르골 소리가 어떤 화려한 음악보다 내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생각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제 잘 못해냈던 일, 내일 다가올 일 때문에 불안함에 갇혀 지내왔던 시간이 참 길었다. 그런 불안함을 감추고 싶어서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계속 나를 감추다 보면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점점 잊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나에게 집중하면 겉모습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화려함이 아닌 진심에 더 크게 반응한다. 나의 마음에 내가 먼저 귀 기울이다 보면 지금 내 모습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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