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위염으로 인해 카페인을 멀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대학교에서 과제에 치여 살다 보니 냉장고에 커피를 쟁여두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날이 늘어갔다. 소화제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병원에 갔더니 위염이었다. 내시경으로 검사하며 사진 찍은 것을 보니 위가 많이 상해있었다. 위 안에 여기저기 피가 있어서 무섭기도 했다. 한 달 정도 먹을 엄청난 양의 약 처방과 함께 약 먹는 동안 고기, 밀가루, 튀긴 것, 카페인은 멀리하라고 하셨다.
카페인이 많이 든 커피를 못 먹게 되자 카페에 갈 때마다 어려운 선택의 순간을 마주했다. 카페 메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커피를 일단 제외하고,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우유가 들어간 라떼도 조심스럽고, 탄산을 선호하지 않아서 주로 선택하는 것은 차 종류였다. 하지만 물에 티백 하나만 넣어주는 것을 커피보다 비싼 돈을 주고 먹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오설록 티하우스에 가게 되었다. 뭘 마실지 고민하다가 ‘달빛걷기’라는 이름이 예뻐서 그 차를 주문했다. 차가 나오고 한모금 마시니 눈이 번쩍 뜨였다. 차에서 배의 달콤한 맛이 난다니! 차 맛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달빛걷기를 맛본 후 차에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달빛걷기 티백을 사서 집에서 마시기도 했고, 또 내 눈을 뜨이게 할 차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차의 특성에 따른 이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예쁜 틴케이스에 담긴 차도 많았다. 이름이나 패키지만 보고 샀더니 내 입맛과 다른 차도 있었다. 그래도 취향에 맞는 차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커피가 사라져 헛헛한 마음을 차로 조금씩 채워갔다.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을 예전보다 점점 더 많이 느낀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기댈 곳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따뜻한 티타임이 절실해진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티타임도, 나 혼자 즐기는 티타임도 차가운 세상 속에서 마음의 온기를 잃지 않게 도와준다. 티타임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하다 보면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도, 행동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이 세상도 조금씩 따뜻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