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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05. 2023

고단한 하루를 물들이는 티타임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위염으로 인해 카페인을 멀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대학교에서 과제에 치여 살다 보니 냉장고에 커피를 쟁여두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날이 늘어갔다. 소화제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병원에 갔더니 위염이었다. 내시경으로 검사하며 사진 찍은 것을 보니 위가 많이 상해있었다. 위 안에 여기저기 피가 있어서 무섭기도 했다. 한 달 정도 먹을 엄청난 양의 약 처방과 함께 약 먹는 동안 고기, 밀가루, 튀긴 것, 카페인은 멀리하라고 하셨다.


카페인이 많이 든 커피를 못 먹게 되자 카페에 갈 때마다 어려운 선택의 순간을 마주했다. 카페 메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커피를 일단 제외하고,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우유가 들어간 라떼도 조심스럽고, 탄산을 선호하지 않아서 주로 선택하는 것은 차 종류였다. 하지만 물에 티백 하나만 넣어주는 것을 커피보다 비싼 돈을 주고 먹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오설록 티하우스에 가게 되었다. 뭘 마실지 고민하다가 ‘달빛걷기’라는 이름이 예뻐서 그 차를 주문했다. 차가 나오고 한모금 마시니 눈이 번쩍 뜨였다. 차에서 배의 달콤한 맛이 난다니! 차 맛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달빛걷기를 맛본 후 차에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달빛걷기 티백을 사서 집에서 마시기도 했고, 또 내 눈을 뜨이게 할 차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차의 특성에 따른 이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예쁜 틴케이스에 담긴 차도 많았다. 이름이나 패키지만 보고 샀더니 내 입맛과 다른 차도 있었다. 그래도 취향에 맞는 차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커피가 사라져 헛헛한 마음을 차로 조금씩 채워갔다.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을 예전보다 점점 더 많이 느낀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기댈 곳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따뜻한 티타임이 절실해진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티타임도, 나 혼자 즐기는 티타임도 차가운 세상 속에서 마음의 온기를 잃지 않게 도와준다. 티타임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하다 보면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도, 행동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이 세상도 조금씩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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