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장을 보러 갈 때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건강하고 맛있게 먹고 싶은데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지 않으니 늘 미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으로 장을 보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오래 고민해도 괜찮으니 나름 합리적인 방법 같았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난 후로는 2년 정도 거의 집 앞 마트에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마트와 멀어지면서 간편식과 더 가까워졌다. 점점 오래 쟁여두고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 사게 되었다. 그러다가 힘들게 버티던 회사에서 퇴사한 뒤, 나에게 좀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에 관심이 커지면서 못난이 채소를 소량으로 구독하는 서비스를 알게 되었는데 마음속에 담아뒀다가 퇴사 후 구독하기 시작했다.
매주 구매할 수 있는 제철 음식 목록이 생기고 그중에 요리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구매하면 그 채소와 그 주에 구매한 채소를 활용한 레시피를 보내준다.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가 많아서 냉장고에 붙여두고 열심히 요리하고 인증샷도 남기도 맛있게 먹었다. 요리와도 채소와도 계절과도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밥 먹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직도 직접 채소를 고르고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음식으로 나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그 어려운 길에 도전하게 한다. 요리하며 요리도구에도 관심이 생겨 미니 솥과 스텐 프라이팬도 샀다. 나를 채우는 것에 게을러지지 말고 풍성해진 마음으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