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7. 다이어터는 피곤해

살은 혼자 빼세요

by 채널김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많다 보니 자꾸만 살이 찐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라고 하지 않는가. 요즘은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다이어트 주사로 쉽게 살을 빼기도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효과를 본 사람들이 많아서 신기하다.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식욕이다. 살은 안 먹으면 안 찐다. 아주 간단하고 모두가 알지만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니 스스로 제어하긴 어렵다. 또 운동도 같이 해야 건강하게 뺄 수 있지만 운동이 싫을 뿐이다.


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만난 권대리는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일도 꼼꼼히 했다. 일 하는 내내 의견을 잘 내기도 하고 사람 참 괜찮아 보였다.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점심도 맛있는 집을 골라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그가 갑자기 '다이어트'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권대리는 과체중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과체중이어서 딱히 겉모습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건강해 보였고 옷도 잘 입는 편이었다. 본인의 외모에 자신감이 없다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어느 날 권대리는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어제 퇴근길에 다리를 삐끗했다고 한다. 심하게 다치진 않았지만 며칠간 깁스 신세를 져야 한다고 했다. 그때 권대리는 깨달은 게 있었나 보다. 몸이 무거워서 힘들다느니, 염증 수치가 높아 잘 안 낫는 거 같다는 말을 많이 했다.


며칠 뒤 깁스를 풀고 와서는 이제부터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젊은 나이인 줄 알았는데 다치고 보니 건강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앞으로 나이가 들면 다이어트가 더 힘들어지니 살을 빼고 운동을 한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정상체중으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많은 질병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권대리를 응원했다. 날렵한 몸이 되어 좋아하는 옷을 마음대로 입고, 더욱더 건강해진다니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점심도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로 해서 덩달아 나도 같이 다이어트에 동참하기로 했다. 돈도 아낄 겸 괜찮은 생각이었다. 밖에 나가서 식당을 가면 줄 서는 시간도 아까웠는데 도시락을 바로 먹을 수 있으니 시간 절약도 많이 됐다. 이래저래 둘 다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권대리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살이 잘 빠진다면서 자랑을 했다.

"오, 대단한데? 비결이 뭐야?"

"요즘 점심까지만 먹고 저녁은 굶어요!"

"점심도 엄청 다이어트식이던데 저녁까지 안 먹으면 너무 배고프지 않아?"

"빨리 많이 빼놓고 운동하려고요"


그렇게 권대리는 며칠간 굶는 다이어트를 했다. 건강에 걱정스럽긴 해도 알아서 잘하겠지 싶었다. 겨우 한 두 달 사이에 권대리는 눈에 띄게 슬림해졌다. 살쪄서 못 입었던 옷도 아주 잘 맞는다며 좋아했다. 단기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그쯤 나는 집에서 싸 오던 도시락에 지쳐서 다른 사람들과 점심외식을 하는 날이 많았다. 살 빼는 건 내가 아니라 권대리니까. 우리가 외식을 할 때도 권대리는 꿋꿋하게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뜯었다. 세 달쯤 지났을까? 살을 어느 정도 뺐다고 생각했는지 권대리는 책상 위에는 안 보이던 간식이 생겨났다. 간식에는 "저당", "단백질 간식"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게 쓰여 있었다.


나도 간식을 좋아하지만 권대리를 배려한답시고 자제하던 중이었다. 이제 살도 어느 정도 뺏으니 나도 간식을 먹을까 해서 좋아하는 과자와 빵을 잔뜩 사서 책상 서랍을 채워놨다. 업무 중간중간 까먹는 간식이 얼마자 짜릿한지 모르겠다.


권대리가 날 보더니 본인의 간식과 한 번 바꿔먹어보자고 한다. 권대리가 준 건강 간식도 제법 먹을만했다. 하지만 설탕과 탄수화물 범벅의 맛은 이기지 못하는 법. 그동안 잘 참아오던 권대리는 조금씩 내 간식과 맞교환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부터 점점 권대리는 예민해졌다.


"그런 거 드시니까 저도 먹고 싶잖아요.."

"오늘 제육 드셨나 봐요? 냄새 죽인다.."


자기가 참는 만큼, 남이 먹는 게 더 신경 쓰이는 얼굴이었다. 내가 과자를 뜯으면 한숨을 쉬었고, 달달한 음료라도 사 오면 의미심장하게 쳐다봤다. 점심에 뭘 먹었는지, 간식을 몇 개 먹었는지, 괜히 보고 듣는 척하며 다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은 진짜 아무거나 막 드시네요.”
“전 저녁 굶는데, 이렇게 드시면 살 안 빠져요.”


권대리의 말에 날카로움이 느껴졌지만 처음엔 웃고 넘겼다. 하지만 그 말들이 쌓이니까 이상하게 내가 눈치를 보게 됐다. 내가 살을 빼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왜 내가 권대리의 다이어트에 같이 참여하는 사람이 된 건지 모르겠었다.


나는 그냥 배가 고파서 먹었을 뿐이고, 그는 자기 선택으로 굶고 있을 뿐인데 어느새 분위기는 내가 죄인이고, 그는 피해자처럼 굴었다.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한데 이제는 점심시간, 간식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까지 신경 써야 했다.


도대체 왜 남의 다이어트 때문에 내가 같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걸까. 권대리는 살은 빠졌는지 몰라도 여유와 좋은 인상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인성은 뱃살에서 나온다는 우스겟소리가 진짜인가보다.


그리고 그 여유가 빠진 자리에, 괜히 내가 맞아야 할 신경질이 들어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