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몸을 놓아줘야 할 때
“고쳐드릴게요.”
그 말을 참 쉽게 했다.
한의사가 되고,
초창기에는 그랬다.
무릎이 아프다는 어르신에게도,
허리가 굽어간다는 분에게도.
젊은 내가 보기엔,
그 모든 통증이 ‘치료 대상’이었다.
침을 놓고,
약을 쓰고,
생활습관을 바꾸면
언젠가는 예전처럼 다시 걷고,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15년이 지나고,
나 역시 이제는
‘몸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
이 되었다.
2년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음식도 신경 써가며
몸을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느끼던 어느 날,
그동안 잠잠했던 질환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충격이 컸다.
'이만큼 챙기고 있는데,
왜 몸은 더 나빠지는 걸까.
뭐가 잘못된 걸까.'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내 노력'만 떠올렸지,
그동안 묵묵히 나를 위해 일해온
'내 세포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
내가 알지 못한 사이에도
묵묵히 나를 살려낸 그 세포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고,
이제는 그들도 지치고,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건강이란
언제나 좋아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시점부터는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치료실에서는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지난번에는 침 한 번 맞고 나았는데,
왜 이번에는 잘 안 낫죠?”
그럴 때마다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몇 번이고 삼킨다.
“그때보다 지금...
몸이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아졌잖아요.”
상처가 될까 봐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꼭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예전처럼만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무슨 뜻인지 나도 잘 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그 시절의 몸을 놓아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건강한 루틴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몸이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나니,
이제는 몸과 싸우는 대신,
몸과 손을 맞잡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혹시 지금,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시절의 몸은 떠났지만,
수많은 날들을 견디고 지나온,
익숙하고 정직한 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몸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치료를 멈추자는 뜻도 아니다.
다만,
과거의 몸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대신,
지금의 몸에서 다시 시작하는 연습.
그 연습이 더 단단한 회복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줄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나누고 싶다.
“예전의 몸을 놓아줄 수 있을 때,
진짜 회복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