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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na Nov 01. 2020

[여섯 권] 호기심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주는 책

[큐리어스] - 이언 레슬리


의도적인 무지는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전략적으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큰 조직에는 혁신이나 조직 운영의 향상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영자가 층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pp.168-169

 사실 이 책을 읽고 글을 쓰기까지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열렸던 도서관이 다시 휴관을 하고, 구매하려고 찾아보니 책은 절판이 되었고... 책을 구하는 것도, 마저 다 읽는 것도 너무 오래 걸렸네요. 지난번 [다섯 권] '경애의 마음'에서 다음 키워드로 선택한 '인간의 본능'은 이 책을 염두에 둔 단어였습니다. 이 책의 소제목이 '인간의 네 번째 본능' 이거든요. :)

그럼 각설하고 오늘은 이언 레슬리 작가의 [큐리어스]를 소개해보겠습니다.


[큐리어스], 이언 레슬리 저, 을유문화사, 2014


저는 이 책을

호기심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주는 책

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여기, 우울증에 빠졌다가 소크라테스와 고대 그리스 철학, 전기와 자기장 그리고 르네상스와 프랑스 인상주의에 대해 책을 읽기 시작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계획이나 방법론 같은 것 없이, 오로지 호기심에 따라 책을 읽었습니다. 책 속 지식을 통해 남자는 스스로가 아는 지식이 얼마나 없었는지에 대해 놀랐고,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기가 눌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이 믿기지 않을 만큼 '흥미롭다'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된 거예요. 관심만 가진다면 중력의 법칙이든, 풀잎이든 간에 모든 것이 굉장해 보인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려줍니다.

"어떤 것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흥미로워집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말해 주지'않아요." (pp.13-15)

그는 영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이자 아카데미 수상자인 존 로이드 감독입니다. 존 로이드 감독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가지는 것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호기심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인 책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해 줍니다.


 '호기심'은 '새로운 것이나 신기한 것에 끌리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담은 단어입니다. 어릴 적엔 호기심을 가지란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고 졸업을 하고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뭔가 굉장히 오랜 시간 한 길만을 걸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인 거 같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에 대해 '좀 무모한 거 아냐?'라는 말이 오가는 것을 보니, 어느새 '호기심'이란 단어는 '무모한'으로 변해버린 느낌입니다.


'호기심'을 잃어버린 제게 작가는 '호기심'에 대해 깔끔하게 정의 내려줍니다.

지적 호기심은 새로운 것에 대한 단순한 추구가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방향 잡힌'노력으로 숙성된 것을 나타낸다. 지적 호기심은 다양성 호기심이 성숙하면서 생겨난다. p.45
지적 호기심은 매우 힘든 '노력'을 요한다. 지적인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하다. 그래서 더 힘들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보람 있다. p.46

호기심도 다양성이 있는가 보군요. 하긴 생각해보니 '호기심'이란 단어가 있는데 '지적 호기심'이란 명칭이 따로 있기도 하고... 어디에 잠깐 흥미를 가지는 것을 '지적 호기심'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그럼 호기심에 대해 심리학의 관점으로도 한번 살펴볼까요?


저명한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호기심을 생물학적 충동이라기보다는 지적 활동의 일종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호기심은 세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지적 욕구에서 나온다. 피아제는 예상하는 바와 실제로 일어나는 일 사이에 '불일치'가 있을 때, 즉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벌어지는 일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 인간의 호기심이 자극된다고 보았다. 피아제는 아이들이 호기심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를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아주 단순한 이론만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아주 적게 가지고 있다. 날마다 보고 접하는 것의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이론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무언가 설명을 요하는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p.76


읽다 보니,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겠네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벌어진 일 사이에 간극이 없거나 그 간극을 모른 척해버린다거나.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느꼈는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일,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닌데 저는 일상이 힘들다는 것을 핑계로 눈앞에 보이는 간극을 외면하면서 지내왔던 거 같네요.


호기심을 갖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의 주장도 나옵니다.

일찍이 존 스튜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인류 발전의 현 상태에서 사람들을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는 다른 사고방식 및 행동 방식에 접하게 하는 것이 갖는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p.121

호기심에 대해 설명해주고 중요성까지 알았으니 여기까지 읽으면서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그럼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 방법을 얻고자 이 책은 독서를 멈추지 않도록 합니다.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여주거든요.


2011년에 캐나다 요크대학의 심리학 교수 레이몬드 마르는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으로 뇌를 분석한 연구를 검토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사실 제가 '큐리어스'란 책을 알게 된 건 다른 책 덕분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이 연구에 대해 설명하면서 인용한 책으로 '큐리어스'를 가리켰고 언젠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만들었거든요. 이 연구가 흥미로운 점이 '소설'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에서 마르는 소설을 이해할 때 사용되는 신경망이 인간관계를 다룰 때 사용되는 신경망과 상당 부분 겹친다고 결론 내렸다. 소설은 실제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머릿속을 시물레이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친구, 적, 이웃, 연인이 바라는 것, 실망한 것, 동기, 의도 등을 해석하는 데 유용한 연습이 되는 것이다. 2013년에 진행된 연구에서 뉴욕 뉴스쿨의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은 다음에는 사회적 지능과 정서적 지능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플롯 위주의 대중 소설이 아니라 문학적 소설을 읽을 때만 그랬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문학적 소설은 글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서 독자가 상상해야 하는 부분이 더 많고, 다라서 등장인물의 심리를 해석하는 데에 독자가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적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감의 영역에서도 수수께끼보다는 미스터리가 호기심을 더 잘 훈련시킨다. p.124

 책을 여러 권을 두고 천천히 읽는 편인데 이 부분을 읽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두께에 엄두가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앞에서 호기심의 가치에 대해 알았기 때문에 실천을 해야 하는데... 너무 높은.. 벽이.. 아닐까 싶지만 까짓 껏 한 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잡고 드디어 완독 했습니다. 적어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었던 기간 동안은 제 호기심이 조금 더 훈련이 되었으리라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의도적인 무지는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전략적으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큰 조직에는 혁신이나 조직 운영의 향상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영자가 층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pp.168-169

 이 부분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함축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하는 문구로 선정한 것은 '의도적인 무지'란 이 단어가 개인, 사회에서 너무도 많이 적용되어 단어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지 않으려 하는 것 역시도 '의도적인 무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를 유지하려고 만드는 것이죠. '안정'과 '유지'는 참 좋은 단어인 것 같다가도 갑자기 다가오는 '혁신'이란 단어를 미처 따라가지 못해 '도태'와 '퇴보'로 변해버리기도 합니다.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래를 더 잘살기 위함이 아닌 '의도적인 무지'를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어쩌면 필수 조건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호기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호기심은 삶의 힘이다. 우울증이 내면으로 향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즉 세상의 어느 것도 내가 관심을 둘 만하지 않다는 느낌(혹은 내가 관심을 갖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다면, 호기심은 그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향하게 한다. 세상이 마르지 않는 영감, 매력, 흥미를 주는 곳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p.283


이 책을 읽고 나니, 고전 소설을 꼭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 책에서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우리에게 깊이 있고,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해 숙고하도록 우리를 이끈다고 평가합니다. 이 책이 평가한 부분을 중점으로 다시 읽은 개츠비는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개츠비에서 심오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며 칭찬까지 아끼지 않는 것을 보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의 착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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