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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미 May 23. 2019

어느 날의 일기 3

4월 14일, 2014

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소설가와 평론가는 하나 같이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말과 행동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던 수많은 글들이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칠 때 달은 손끝에 걸려있고, 달에 대해서도 손끝에 대해서도 우리는 침묵하지 못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동인이 실패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 그 실패로부터 말들을 자아내는 사람과 실패의 말들을 가지고 다른 실패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리고 그 실패의 의미를 한층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어울려서 만들어 준 문학의 자장 안에서 나는 배우고 썼다.


실패와 마주할 때 우리는 늘 실패의 씁씁한 맛을 느끼기 보단 어떻게 실패하느냐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실패하는 순간으로부터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과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실패는 다음 순간에 실패하지 않기 위한 능력과 자리들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은 걸까. 이걸로 됐다고 말하는 어느 순간에 우리는 실패라는 말에게 자신을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선택 혹은 취향이라면 괜찮은 걸까. 아름다운 것들이라고 믿어버리면 실패의 힘은 그 하나로 가능하기만 한 걸까. 봄에는 그런 물음들이 자꾸만 무서워지곤 하였다.


물론 여전히 많은 경우에서 실패는 불가피하다. 말은 끝을 자주 잃어버리고, 행동들은 자꾸 엇나간다. 돈은 늘 부족하고, 가족은 매번 힘들어지고, 주어진 시간은 터무니없이 적고, 함께한다고 느꼈던 친구들로부터 쉽게 상처받는다. 그런 실패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서로의 영역들을 이해하며 서운한 마음들에 사로잡히지 않는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늘 외로워하고 슬퍼하느라 죽자는 소리를 하고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낮고 유연하게 마음 속에서 천천히 구르고 있다. 다행히도 요새는 이래뵈도 행복하다고 곧잘 얘기하고 있다.


다시 그런 마음으로부터 돌아보며 지난 마음들이 모두 결여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인간을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위치를 바꾸고 거리를 정하면서 생기는 것들. 먼저 말과 행동을 정하면서 구획되는 자리들로부터는 그 자신이 비록 목소리와 몸짓일 뿐일지라도 한 평의 방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말과 행동이 늘어지면서 삶이 불어난다는 사실을 믿는다. 실패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아름다운 것들을 믿기로 하였다.


실패를 사랑하는 순간에도 절대 실패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 실패만이 아름답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 결국 실패는 우리가 바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걸 이뤄줄 것은 더더욱 아니므로. 말과 행동이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 쓰여지는 글들은 아름답지만 무용한 편이었다. 실패라는 사실을 넘으려고 주변 없는 말을 이어나가고 시간을 쪼개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의지도 없이 문학을 아름답게만 여기는 마음들은 언젠가는 바로 그 문학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그 아름다워 죽을 문학마저도 그 이들을 버릴 것이다. 적어도 문학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아름다움에만 기대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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