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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Jul 10. 2019

나는 왜 가성비와 개이득이 이리도 좋을까

나는 나의 선호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운가

미국에는 음식을 자유롭게 담고 그 무게만큼 돈을 지불하는 시스템 (Hot food bar, salad bar 등)이 흔하다. 학교나 직장의 구내식당에서 이런 시스템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그 외에 회사 근처의 일반 식당들도 종종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형 슈퍼마켓의 식품코너에도 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학교 식당의 이런 시스템을 보고 내가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생각만큼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음식 무게와 가격이 연동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볍지만 가성비가 높은 음식들 위주로 담게 된 것이다. 닭가슴살이나 기타 소스가 없이 구운 고기, 튀김 요리, 그리고 샐러드는 이런 면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다. 그렇게 나름 고기와 튀김, 샐러드를 양껏 담았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적게 나오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반면 쌀밥이나 특히 수분을 많이 머금은 파스타 종류는 무겁기 때문에 양껏 담다 보면 가격 폭탄을 맞게 된다. 찜 요리나 소스가 많은 볶음요리 역시 물과 기름이 많아 가성비가 좋지 않다. 어느덧 나는 Hot bar에 오면 음식 자체보다 음식의 무게와 가성비를 따지며 손으로 들어보면 대충 얼마가 나올지 예측이 가능한 고수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이 시스템이 장사가 되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이나 중국 같은 곳에서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가성비 좋은 메뉴만 담는 바람에 구운 고기나 튀김 요리는 텅텅 비고 파스타나 쌀밥은 남아돌 것이다. 그러면 식당 입장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아 가격을 올리거나, 비싼 메뉴는 천천히 리필하거나, 좀 더 머리를 써서 비싼 메뉴는 그만큼 무겁게 조리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거나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슬슬 짜증 나기 시작하는 소비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결국에 이 식당은 문을 닫게 되는 그림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이 시스템이 자주 잘 작동하고 있으니 신기했던 것이다. 


궁금해서 한번 살펴봤는데 이곳 사람들은 나처럼 핫 바 앞에서 머리를 굴려가며 어떻게 음식을 조합할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밀가루와 치즈가 떡이 되어 엄청 무거워 보이는 라자니아를 나는 절대 담지 않을 것이지만 이들은 거리낌 없이 담아갔다. 결국 이렇게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는 사람들 덕분에 나처럼 얌체같이(?) 가성비를 따지며 음식을 퍼가는 사람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별문제 없이 수지를 맞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 사람들은 왜 나처럼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행위, 즉 객관적으로 볼 때 가치가 높은 것에 나의 선호를 맞추며 생기는 ‘개이득'에 행복해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질문을 해 놓고 나니 사실 질문이 거꾸로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면 가성비 때문에 나의 선호를 바꾸는 행동을 한 사람은 바로 나다. 첫눈에 땡겼던 것은 크림에 범벅된 해물 파스타였지만 그걸 양껏 먹었다가는 가격이 너무 비싸게 나올 것 같으니 이내 가볍지만 제법 맛있는 새우튀김과 소스 없는 파스타로 나의 선택을 바꾸고, 계산대에서 예상대로 적게 나온 가격을 보며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아끼는 금액은 한 끼에 2-3천 원 정도이다. 한 달 내내 이런 선택을 하면 약 4-5만 원 정도를 절약하게 된다. 내가 학생 때였다면 이 정도가 큰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그리 큰 금액일상 아닌데, 왜 나는 이런 적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격차이 때문에 내가 더 먹고 싶었던 것을 쉽게 포기하고 조금 덜 먹고 싶은 음식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일까? 


아주 직설적으로 답을 하면 결국 어린 시절에 내가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살지 못했던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흙수저는 아니었고 나름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돈 걱정을 안 하면서 살 수 있는 수준은 또 아니었던 것이다. 나 개인뿐 아니라 당시 한국에 살던 사람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당장이라도 등지고 떠나고 싶을 만큼 힘든 여건은 아니었고 계속 발전 중이기는 했으나 우리네 삶이 서구 선진국들에 비하면 아주 풍요로운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나 개인도,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도 평균적인 미국인이나 미국의 생활수준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습관이나 정체성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지속된다. 


어린 시절에 제한된 용돈을 가지고 어떻게 최상의 만족도를 누릴 것인지를 고민하는 데 상당한 두뇌 에너지를 사용해 온 나는 아직도 식당에서, 마트에서 끊임없이 가격표들을 비교해 가며 뭘 살지 고민하는 데에 기꺼이 시간과 두뇌 에너지를 사용한다. 무언가 특별 할인이라도 하는 날엔 예정에 없던 이 소비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결정하기 위해 두뇌 CPU를 풀가동하게 된다(새로운 가격변수를 넣고 최적화 계산을 다시 돌리는 과정).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 현명한 행동이냐 하면 아마도 아닐 것이다. 차라리 마트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집어서 몇천 원을 더 내더라도 그 두뇌 에너지를 다른 생산적인 일에 사용하는 것이, 또는 어떻게 하면 와이프를 기분 좋게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나의 이런 행동은 몸에 습관처럼 배어 있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성인 한국인들도 집단적으로 보면 동시대를 산 미국인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여유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실제 경제 수준뿐 아니라 주변 시선에 대한 압박 등 사회적인 맥락 포함) 평균적으로 물건 가격에 대한 소비 민감도가 좀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격에 민감하면 아무래도 개인의 선호보다는 가격표나 브랜드 이미지 같은 좀 더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에 쉽게 휘둘리는 경향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의 가성비 열풍은 비교적 최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무언가의 본질보다 그 가격을 먼저 보는 현상, 비싸든 싸든 그 가격이 의사결정과 선호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현상 자체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고 느껴진다.


여기서 굳이 정신승리를 하자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들을 상대로 눈앞의 케이크를 먹지 않고 참아내면 나중에 케이크를 두 배로 주는 실험을 하고 추적 조사한 결과 나중의 케이크 두 조각을 위해 지금 케이크 한 조각을 인내하는 행동을 보인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확률이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이 아이들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원을 아끼며 현재의 즐거움을 다소 희생하는 인생을 살아온 결과 나도 지금 수준이나마 살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우리 부모세대가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지금의 한국인들도 이 정도로 잘 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미국에서 유태인들이 이렇게 부강해진 것도 다 이렇게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원을 아끼며 독하게 살아온 덕분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실제 내 주변의 유태인 친구들을 보면 지금은 돈 잘 버는 컨설턴트이고 변호사이지만 아직도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월 4천 원을 내느니 기꺼이 광고를 들어주는 선택을 한다. 그중 한 친구의 할머니는 아직도 여행을 가면 호텔에서 식당 물품들을 하루에 하나씩 슬쩍해서 집안 살림에 보태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셨다고 한다. 사는 것이 만만치 않아 악착같이 살아온 유태인 이민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다 공부 열심히 하고 치열하게 살아서 지금은 명문대를 장악하고 (미국 인구의 1.4%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아이비리그 스쿨 정원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의 각 분야의 엘리트들로 자라난 것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헝그리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부강해질 것 같다. 얼마 전에 본 스탠드업 코미디 쇼에서 인도계 호스트가 짠돌이(cheap)인 것으로 따지면 인도인들이 1등이고 중국인들이 간발의 차로 2등이라는 농담을 했는데 그곳에 온 백인 관객들이 모두 신나게 웃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미국에서 지위가 가장 빠르게 상승하는 민족의 1, 2위도 아마 그들의 자리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되면 그 농담은 더 이상 웃기지 않겠지...


정신 승리/자기 합리화에 잠시 심취했더니 논점이 흐려지는 것 같다. 잠시 즐거웠던 정신 승리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래 하려던 말은 이거였다 - 내가 아무리 가격에 민감하도록 습관이 형성되어 있어서 돈 몇 푼에 판단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임을 자각했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의식적으로 뭐가 더 중요한지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인생 두 번 사는 것도 아닌데, 일상 생활에서 눈앞의 가격이나 남들이 다 좋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따라가기 위해 정신없는 것보다는 가격표를 잠시 가리고 (또는 팔랑귀를 잠시 부여잡고) 내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 후 그것을 따라가는 삶을 조금 연습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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