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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Dec 10. 2023

바다

(2) 평안

바다는 기후재앙 이후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는 사람을 무엇보다 증오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시도 때도 없이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다면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들이 여행을 떠난 거라고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모르는 일이었다. 죽고자 해보았으나 죽기로 결심한 날에는 꿈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으로 뜯어말렸다. 바다는 어릿하게 보이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닿고 싶어 울다가 깨곤 했지만 영혼과 운명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가 자살하지 않게 했다. 

     

집이 원래 없었거나 없어진 사람들을 위해 여러 공공시설은 공식적인 임시 보호시설이 되었다. 바다는 동사무소 건물 내에서 살기를 꺼려 망가진 텐트를 주워 건물 옆에 세워서 지냈다. 사람들이 모여 좋든 싫든 대화가 오가고 공동의 감정이 형성되기를 요구받는 속에 있는 것은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다는 매일 텐트에 잠수하듯 들어가 있다가 화장실을 가거나 음식을 배급받을 때만 빼꼼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는 갑자기 충동을 느꼈다. 


‘달리고 싶다.’


하지만 겁이 났다. 텐트에서 멀어지는 것도, 안 쓰던 근육을 쓰는 것이 겁이 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삶을 혼자 이어나가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참아보려 텐트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도 봤다.     


‘안 되겠어.’


다리를 높게 높게 들어 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원래부터가 충동적인 그라 이 익숙한 허기짐을 달래는 길은 행하는 것뿐임을 알았다. 바다는 천천히 텐트에서 몸을 완전히 뺐다. 고개를 들어 달릴 방향을 찾았다. 건물이 무너진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복잡했지만 사방에서 햇빛이 쬐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리를 들어봤다. 높이 들어봤다. 달리듯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봤다.

 

바로 그때, 잃어버린 것들이 머릿속에 터졌다. 빽빽한 건물들, 그 사이의 낮은 주택들, 길거리의 시끄럽게 웃는 사람들, 쿰쿰하게 나는 담배 냄새, 크리스마스 나무의 반짝이는 조명, 어린이의 춤....... 아꼈던 것들과 욕했던 것들이 함께였다. 머릿속이 손오공의 족쇄처럼 조이는 것 같았다. 머리가 날카롭게 아파왔다. 춥지도 않은데 몸이 덜덜 떨렸고 구역질이 났다. 헛구역질을 반은 하고 반은 참으며 바다는 엉금엉금 다시 텐트로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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