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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Apr 15. 2024

돌봄을 억까하는 가부장제

억까라는 단어를 친구로부터 배웠다. 킹 받는다는 말처럼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제 이 말을 대체할 단어기 없다. 그리고 이 새로운 단어는 내 안에서 현상이 언어가 되도록 도왔다.


-이 글에서 '여성'이란 가부장제가 필요로 하는 성별 이분에 의했을 때 여성으로 패싱 되는 인간동물을 말한다. 이 글에서 '남성'이란 가부장제가 필요로 하는 성별 이분법에 의했을 때 남성으로 패싱 되는 인간동물을 말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젠더는 다를 수도 있다.



1. 생추어리에는 왜 여성이 남았나


정치도 사회활동도 표면적인 얼굴이 남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곳은 성별이분법에 의했을 때 여성으로 패싱 되는 사람들만 있다. '생추어리' 상영회에서 만난 왕민철 감독은 프로젝트 문베어의 사육곰 생추어리도, 막상 현장에서 돌봄을 하는 사람은 세 여성(패싱)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왜 그렇게 젊은 여성들만 하는지......."


나는 너무 답을 알 것 같았다.


밀려난 노동이 밀려난 사람에게 떠맡겨지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억압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폭력을 이해하는 정도가 더 예민한 것 같기도 하다.)


가부장제는 '돌봄'은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과 '집안'에서 일하는 것은 둘 다 노동력을 요하는 일이지만 보통 전자는 급여와 명예가 부여되고 후자는 둘 다 부여되지 않는다. 돌봄을 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도, 살아갈 사람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돌봄은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이다. 그런데 동등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여기서 마법의 단어가 등장하면 될 것 같다. 가부장제는 돌봄 노동을 억까한다. 나도 가부장제 속에서 살면서 돌봄 노동을 억까해 왔다.


그럼 밀려난 돌봄 노동은 왜 여성에게 가는가?


나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와 돌봄 노동의 비가시화가 어떤 일련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자본주의는 효율을 중시하는데… 그래서 아웃풋이 금세 허물어지고 반복적인 돌봄 노동이 평가 절하될 건데… 그런데 왜 여성들이 도맡아 하고 있을까? 가부장제는 어디쯤 들어가는 거지?

페미니즘 공부를 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답을 내놓으시오

'잘 모른다'는 말은 선을 넘고자 할 때 쓰면 겸손이지만, 선을 그을 때 쓰면 무기다.......


도움을 구해 이해한 바에 의하면, 가부장제는 자본주의가 수월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사용되는 도구로 쓰인다. 자본주의에서는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긍정하고 노동자들에게서 최대의 산출량을 요구한다.


인간 노동자들은 스스로 광합성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물리적, 감정적 돌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돌봄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가부장제라는 도구는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가부장제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여 ‘바깥일’에 어울리며 여성은 소극적이며 '집 안'과 어울린다고 규정한다. 남성이 주인공이고 여성은 남성의 조력자라고 한다. 그러니 가부장제를 강화하면 여성들의 돌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부장제는 자본주의와 촘촘히 얽혀 있어 가부장제에 대한 백래시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설명이 더 필요하다면 댓글로 적어 저를 이해시켜 주세요.

생추어리 자체는 밀려난 돌봄이 맞다. 사회는 동물 돌봄, 특히 동물 산업 외의 '가축화된 동물'에 대해서 어떠한 돌봄 체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회 속에서 동물은 야생 동물, 경제 동물, 반려 동물로 나뉘어야 한다고 인간은 정해 놓았고, 그 속에 들어가지 않는 동물(공장에서 탈출한 돼지,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자 등)은 다시 돌아가거나 살처분이 되곤 했다. 그런데 생추어리는 그 예외의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 어떤 주어진 용도가 없는 동물들이 선 자리를 벌려 넓히고자 한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지 않기에 현재는 개인들에게, 특히 여성 인간동물들에게 돌봄의 책임이 부과되어 여력이 닿는 대로 돌봄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생추어리가 지속가능하려면요

그렇다. 생추어리의 현장 노동자는 여성이 대다수다. 새벽이생추어리도 새벽을 구조할 때 함께 구조한 사람 중에는 남성이 있었지만 지금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남성은 없다. 보듬이(돌봄 봉사자) 중에서도 소수였다. 다들 어디 간 거.......


 왕민철 감독은 생추어리가 '젊은 여성들'이 돌봄을 도맡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한 때의 패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생추어리가 지속가능하려면 젊은 여성들의 전문성이 인정되어야만 한다. 젊은 여성 활동가들의 생추어리에서의 노력과 경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지금 생추어리 운동과 동물권 운동을 이끌고 있는 것은 여성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느 분야의 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생추어리 활동가들은 많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많은 정체성 중에서 나이와 성별, 즉 '젊은 여성'만으로 바라보면서 그것을 위태롭고 약하다는 특성과 연관 짓는다면, 당신은 생추어리조차 가부장제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활동가가 곧 단체인 생추어리는 언제나 위태롭고 걱정되는 곳이 된다. 하지만 우리를 돌봄 전문가, 생추어리 전문가로서 인정한다면 단체는 신뢰를 받는 곳이 된다.


생추어리에서 새벽과 잔디, 그리고 활동가들의 삶은 매일이 투쟁이다. 오늘도 아침 7시까지 활동가가 돌봄을 하러 떠났을 거다. 새벽과 잔디가 아파 보이면 수의사의 답변을 기다리며 불안과 걱정을 오롯이 감당한다. 아마 내가 가 보지 못한 여러 생추어리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받는 보수는 매우 적어 생계를 책임지지는 못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이나 공휴일이나 생명을 돌보는 일은 쉼이 없다.



3. 엄마는 언니가 취직이 안 된다고 걱정한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이미 충분한 노동을 하고 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살뜰하고 책임감 있게 돌보고 있다. 나는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안 하고, 못 한다. 그는 가족들의 갈등을 중재하고, 마음을 읽어 준다. 필요한 걸 섬세하게 떠올려 챙겨주고, 이해하고, 호탕하게 위로해 준다. 이런 언니가 있어서 살아가는 사람이 여럿이다.


언니는 돌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동은 정말로 분명 노동으로서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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