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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석사 Dec 18. 2020

든든한 나의 지원군들

 산처럼 쌓인 대학원 과제와 시험을 하루 앞두고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를 하원 하러 간다. 온종일 어린이집 생활을 하고 오는 아이를 보는 것은 반갑지만 마냥 기쁘게 데리러 갈 수가 없었다. 아이는 아직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이고 나도 아이와 하원 후에 맛있는 저녁도 함께하고 신나게 놀아주고 싶었지만 당장에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과제가 산더미였다.


“엄마가 정말 미안한데 오늘은 집에 가서 공부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어린이집에 도착하여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 문밖을 나서며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가 이 말을 이해하긴 할까? 괜스레 집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니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던진 말일뿐이었는데도 아이의 대답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괜찮아. 나는 엄마 옆에서 놀면 되지. 엄마는 공부해.”


 언제 이렇게 나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걸까. 마음속으로 감동을 꾸역꾸역 삼키며 집으로 돌아가 거실 한가운데 상을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아이는 나를 방해하지도 않고 내 옆에서 얌전히 나와 같이 책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기 시작했다. 오히려 아이가 노는 데 신경 쓰며 말을 거는 건 내 쪽이었다. 그러자 아이는 “공부해야지. 뭐 하는 거야.”라며 오히려 딴짓하는 나에게 훈수를 두었다.  

  주변에서 묻곤 한다. 아이가 있는데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론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도 무시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노는 시간이 긴 아이를 보며 내가 한 선택이 맞는지, 나의 욕심을 앞세워 가족들에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한다. 하지만 이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 훗날 후회할 수도 있을 나를 생각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나마 나를 이해해주고 뒤에서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아이와 남편이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며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와 저녁을 먹이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밀린 집안일이 있으면 내가 돌아오기 전에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뒤늦게 집에 온 내가 가사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눈에 띄지 않게 해 준다. 내가 수업이 없는 날에도 과제와 마감이 닥쳐 정신이 없으면 아이를 씻기고 재워준다. 아이를 재우다가 본인이 먼저 잠드는 날도 많다.

 주말에는 또 어떤가. 주말에 내가 아이를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버스 여행을 떠나보겠다며 아이와 단둘이 시내버스를 타고 시간을 보내다가 오기도 하고 올여름 며칠 동안 폭우가 쏟아지던 때 아이와 둘이 우비를 쓰고 집 앞에서 장대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남편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고 공부를 하며 육아를 하는 나처럼 직장생활을 하며 육아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에너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는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기에 본인의 에너지와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해서 나를 지원해준다. 나에게 있어서 남편과 아이는 최고의 투자자이자 지원자이다. 


나는 내 인생의 투자자와 지원자인 내 가족을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한 사람들이기에 실망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 언젠가 가족들이 내 인생에 대하여 지분 행사를 하고자 할 때 미래에서 바라본 지금 최고의 투자를 했던 것을 축하한다고 그리고 그때 나를 믿고 투자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기쁘게 배당을 해줄 수 있는 투자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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