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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석사 Sep 27. 2020

육아로 맺어진 끈끈한 동지애




“여보, 나 좀 잘게. 12시에 깨워줘.”


 생후 30일이 채 안된 아이를 퇴근한 남편에게 떠맡기 듯 넘겨주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투정이 극에 달아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목이 터져라 우는 아이를 안고 남편은 집으로 두 번째 출근을 했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느라 씻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끼니도 챙기지 못했지만 가장 잠이 가장 부족했기 때문에 아이의 우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결혼을 하고 막연하게 ‘우리 둘을 반반 닮은 아이가 생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닮은 아이! 어떻게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 속의 우리 부부는 행복했고 실제로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타이밍이 좋지 않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지만) 우리가 만나게 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만을 생각하며 꿈꿨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상상은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아이가 집에 오면서부터 산산조각 났다.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이 부부 사이에서는 암흑기 었다. 아이는 생후 100일까지 새벽에 수유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평일에는 내가, 주말에는 남편이 새벽 불침번을 섰다. 평일에는 남편이 퇴근하고 잠들기 전 6시간이 유일한 내 시간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이 시기에 직장에서 한창 힘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었고 집에 들어와서 짧은 시간이라도 나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아이만 안겨주고 들어가 버리니 조금은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남편의 서운한 표정을 오해하고 ‘그래도 당신은 직장에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한숨 돌릴 수 있고 밤에는 잠이라도 잘 수 있잖아?’라는 생각으로 서운해했다. 그나마 상대방도 힘들 것이라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어(물론 내가 더 힘들었다고 생각면서도) 입 밖으로 서운함을 꺼내지 않아 싸움 없이 그 시기를 무사히 보냈다.

 아이가 100일이 되고 거짓말처럼 ‘100일의 기적‘이 찾아온 날. 우리 부부는 소고기에 맥주를 먹으며 100일의 전쟁 같던 육아를 회고하며 서로를 다독여줬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전장에서 싸우고 승리를 거머쥔 첫 전우애를 느꼈다.



 

 



 아이가 자라면서, 누워있던 작은 생명체에서 점점 사람이 되는 모든 과정 가운데 나와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같은 고민을 하는 건 남편이었다. 같은 개월 수의 아기 엄마들과도 종종 연락하며 조언을 구하곤 했지만 아이들의 다른 성향 탓에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우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우는 횟수도 적고 혼자 잘 노는 유니콘 같은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우에는 서로의 육아에 공감이 어려웠다. 공감을 하더라도 일시적이었다. 우리 부부는 문제가 닥칠 때마다 주변에 조언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하나하나 작은 난관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그 난관들을 지금은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여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나는 종종 남편에게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 묻는다. 물론 남편은 늘 내가 기대하고 있는 모범답안을 이야기하긴 한다. 하지만 과연 이미 답안을 알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인지 실제로 아직까지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남편 스스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연애 2년에 결혼생활 4년, 사실 남편을 만나서 소위 ‘썸‘이라는 관계를 거쳐 뜨겁게 연애를 하고 결혼에 골인하여 부부라는 이름으로 보낸 시간. 어떻게 그 감정이 똑같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감정의 형태와 변화만 있을 뿐 지금 이 순간 내가 남편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명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 중에서도 가장 찐-한 동지애 그리고 전우애로 말이다. 


  

 



며칠 전, 우리 부부는 결혼 5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어느새 4살이 된 아이의 축하를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인생에서 가장 궁극적인 성공이란 당신의 배우자가 해가 갈수록 당신을 더욱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나는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이자 작가인 짐 콜린스의 글을 꺼내본다. 부부란 서로 존경하며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해동안 나는 존경받을만한 아내였는지 내가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은 여전한지 되새겨본다.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살면서 수많은 난관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함께 할 수 있다면 현명하게 그 순간들을 겪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키웠던 뜨거운 동지애와 전우애를 바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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