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벌써 네 번째 퇴사를 했다.
보통 퇴사 후 로망이라고 하면 장기간 여행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 있기 등이 있다. 하지만 내 이번 퇴사가 이전의 퇴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퇴사 후에도 육아라는 다른 업이 존재하는 상태로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소위 말하듯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직장과 육아 중 더 힘든 것을 꼽자면 나는 단연 육아를 꼽는다. 일단 직장은(뜻은 안 통할 수 있겠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성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곳에서는 나름 일을 잘하면 상대방에게 인정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육아는 아이와 의사소통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내가 아무리 우유를 잘 먹이고 기저귀를 잘 간다고 해서 아이가 나의 노고를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인정의 욕구가 강한 나로서는 아이를 굳이 직장동료에 비유하자면 최악의 동료인 셈이었다. 특히 밤새 우는 아이에게 시달리다 출근하는 날이면 직장으로 퇴근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나를 위한 연차는 아이가 아플 때 모두 소진되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이가 평소보다 체온이 높은 것 같으면 아이 걱정보다는 남편과 나 중 누가 연차를 쓸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다.
빠르게 복직해야 했던 엄마 덕분에 아이는 100일이 채 되기 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언젠가 육아에 대한 현사회의 실태를 꼬집는 댓글을 본 적이 있었다.
‘아이를 60이 넘은 부모에게 맡기고 맞벌이를 하면 그 부모는 나이 들어서 무슨 죄냐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일찍이 어린이집을 보내고 맞벌이를 하면 아이가 불쌍하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있으면 집에서 논다고 하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고 딩크족으로 살겠다고 하면 이기적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 아이가 생후 3개월이 갓 지났을 때 어린이집에 보냈으니 남들에게 내 아이는 불쌍한 케이스였을 것이다.
아이를 출산했을 당시에 우리 부부는 양가 어느 쪽에서도 도와주시기 어려운 타지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근무지 특성상 빠르게 복직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린이집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아이가 안타까워 어쩌나 눈에 밟혀 어쩌나 주변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는 건강하게 사랑받으며 컸고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직장맘의 생활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퇴사의 원인은 아이 때문도 아니고 더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너무 별로여서 홧김에 때려치운 것도 아니고 단지 지역 이동으로 인한 재미없는 이유였긴 하지만 직장과 육아의 투잡을 병행하며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가 한 다리를 빼니 드디어 다른 하나가 제대로 보였다.
퇴사한 다음 날,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준비하던 날을 기억한다.
매일같이 잠에 취해 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던지듯이 넣어두고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출근을 했던 3년에 가까운 시간.. 나는 오랜만에 평일 아침에 깨어 있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아침을 먹고 머리를 빗겨주었다.
언제 이렇게 머리가 많이 길었던 걸까. 직장생활과 육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딸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길어진 손톱, 작아진 신발, 어느새 커버린 키, 그리고 어깨를 훌쩍 넘어 등 한가운데에서 넘실대는 긴 머리..
그 날은 빗질이 아프다며 칭얼대는 아이의 머리를 붙잡고 한참 동안 머리를 빗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