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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석사 Oct 05. 2020

딴짓할 시간이 필요해

 



 아침에 눈을 뜬다. 아이를 챙겨 등원시키고 출근을 한다.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다. 저녁을 먹은 후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씻기고 재운다.

 간혹 아이가 일찍 자주면 참 좋으련만 꼭 그런 생각을 한 날이면 유독 더 자지 않는다. 자장가를 불러주고 토닥여주며 재우기 위해 온갖 애를 쓰다가 결국 아이와 함께 잠이 든다. 그리고 다시 아침에 눈을 뜨는 생활이 반복된다. 언젠가부터 내 시간은 없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도 딴짓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재미있는 일, 흥미 있는 일에 대한 갈망을 늘 가지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퇴근 후에는 그림을 그렸고 소위 자기 계발이라고 불리는 딴짓을 하는 것을 즐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계발의 목적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의무 이외의 다른 행위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정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그 지루함과 따분함은 직장 생활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것만큼 흥미 없는 일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아이의 변화와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나에게 있어 그 즐거움은 잠깐이었다. 나에게는 직장 생활과 육아가 아닌 나만의 딴짓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핸드폰을 만지고 순간의 유흥을 즐기는 딴짓이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한 딴짓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직장 생활과 가사, 육아만 반복하다가는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 멈춰있을 것만 같았다. 





여보, 나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어.
일주일에 하루만 퇴근 후 아이 육아를 전적으로 맡아주면 안 될까?”




 나는 대학에서 그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학과를 졸업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림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어릴 때부터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고 학부과정 중 교육실습을 갈 때에는 늘 내가 그림을 그린 매체를 들고나갔다. 첫 직장에서 온라인 마케팅을 하면서 소소하게 블로그에 올린 그림을 보고 그림 의뢰가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부업으로 4년 정도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육아를 하면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림은 늘 나의 갈망의 대상이었다.

시간을 쪼개서 딴짓을 할 수 있다면 취미로라도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평소에도 남편은 내가 하고 싶다는 일에 특별히 반대하진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공동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내가 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남편의 체력과 시간을 온전히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시간을 달라고 하니 남편 입장에서 썩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맙게도 남편은 나의 딴짓을 흔쾌히 허락(?)해주었고 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집이 아닌 미술학원으로 퇴근을 하였다. 




 


 육아와 직장. 아이와 회사.

 내 인생에 나를 위한 시간은 없어 보였던 그때. 그 무한한 굴레 속에서 일주일 중 단 몇 시간의 딴짓을 끼워 넣으니 조금이나마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다시 육아와 직장으로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딴짓은 내 퇴사와 함께 끝이 났다. 


 딴짓으로 시작한 그림이 지금은 내 삶에서 비중이 더 커지면서 더 이상 딴짓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딴짓이 본업이 되니 자연스럽게 또 다른 딴짓을 찾았다. 

 한동안은 식물 키우기에 푹 빠져 세 달 만에 한 개로 시작한 화분을 열아홉 개로 늘리기도 했고 요즘은 아이가 일어나기 전 아침시간을 이용하여 글을 쓰고 있다.

 글 쓰는 게 또 딴짓이 아니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 또 다른 딴짓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나는 계속 시간을 만들어 딴짓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엄마가 아닌 나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엄마가 되었다고 내 인생이 완성형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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