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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an 22. 2019

엄마가 되고  비로소 나는 내가 되었다

나에겐 아이를 갖는 것이 마냥 행복한 일만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아직도 잘 모르겠는 나 자신, 나의 커리어, 나의 인생이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매일 시달렸다. 임신기간 동안 매일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고 남편은 그걸 사다 나르는 투정 섞인 행복한 일상을 꿈꿨지만, 현실은 임신 우울증에 기분은 매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음식만 생각하면 메슥거리는 불안정한 생활이 이어졌다. 남들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혀서 며칠이고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시부모님께서 했던 아무것도 아닌 한 마디가 너무 서러워 몇 날 며칠을 울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인 일인데 그때는 모든 게 시빗거리였다. 울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누가 손이라도 들라치면 얼른 뺨을 갖다 댔다.



아이 낳기 전까지의 내가 살아온 방식 때문에 더 불안하지 않았나 싶다. 학생 때는 더 좋은 성적만을 바라보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오로지 일을 잘하기 위해. 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살아왔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실망하는 상사의 눈빛을 볼 때면, 나는 가차 없이 무너져 버렸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일을 잘하지 못하면. 존재의 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요즘 난리인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예서가 울면서 한 말에 마음이 내려 앉았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어, 한 번도 맘 놓고 놀아본 적 없고, 게임 한번 한적 없고, 여행도 맘 놓고 간 적 없었어."

나도 그랬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면 나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 사람이니까 항상 뭐든 잘해야 했고,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언제나 불안했다.

이런 불안함의 꼬리를 물고 따라가다 보면 어렸을 때의 상처들이 고개를 든다.

내가 하나 틀린 수학 시험지를 칭찬받으려 꺼내 놓았는데 엄마는 칭찬보다 먼저 나에게 물었다. "백점 맞은 애 있어?" "누구(반에 공부 잘하는 아이)는 몇 개 틀렸어?"

부반장이 되면 엄마는 친척들 앞에서 나를 반장으로, 3등을 하면 1등으로 둔갑시켰다. 엄마가 거짓으로 치켜세운 만큼 계속 작아져서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내 능력이 70이면 120을 해내야 했다. 남 앞에 서는 걸 싫어하든 말든 밤을 새워 연습해 각종 대회란 대회는 모조리 나가서 상을 받아야만 했다. 잘해도 불안하고, 잘못하면 기대 설 풀 한 포기 조차 없는 황무지에 홀로 선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중심은 언제나 밖을 향해 있었다.

나보다 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남들에게 끌려다니느라 내 시간을 훌렁훌렁 다 써버렸다.





이런 나였기에 아이를 낳는 게 더 불안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너무나도 작고, 약한 생명체가 내 품에 안기던 그 순간 내가 마음먹은 건 딱 하나였다.

'이 아이에게만큼은 내가 느껴온 불안함을 느끼게 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나로서 단단해져야 했다. 항상 밖에 있던 나의 중심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 낳기 전보다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시간 덕에 항상 남들에게 넘겨줬던 주도권을 이제는 뺏기지 않게 되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나다워진 느낌이 들었다. 남들의 평가에 더 이상 내 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자리엔 참석하지 않아도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 시선은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좀 더 여유 있게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전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더 재밌는 말, 더 대단한 나의 경험을 짜내느라 쉴 틈 없었던 나의 뇌가 요즘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저 웃는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만 하고, 자리를 주도해야만 불안하지 않았는데 사실 나는 혼자 가만히 앉아 생각하길 좋아한다는 걸.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면 이틀이고 삼일이고 앓아눕는 스타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꼭 재밌는 말을 하지 않아도,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가고 싶지 않은 자리에 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하더라도,

나는 그냥 나라는 걸 알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나.






아이를 낳고 나 자신을 잃어버릴까 너무도 불안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이제야 진짜 내가 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희생해야 할 것도,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나다운 선택을 하고 순간에 집중을 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내 시간을 쪼개 쓸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고, 아이의 작은 손짓, 표정 하나에 느끼는 작은 행복, 소소하게 보내는 작은 시간들의 소중함을 배워가며

나는 진짜 내가 될 기회를 얻었다.






_

이렇게 부족한 나에게 와줘서

나를 비로소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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