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아 Aug 14. 2020

어떤 일반화의 오류



 택시를 탈 때 나만의 버릇이 하나 있다. 유래는 이렇다. 대학생 때였는지 휴학생 때였는지, 아니면 가만히 둬도 알아서 자존감이 고꾸라지는 취준생 때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쨌건 20대 때의 일이다. 세 살 버릇은 여든을 가야 한다는 조상님들의 가르침을 이어가기 위해 그때나 지금이나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으로서, 마땅한 벌이가 없던 시절에도 택시를 타는 일이 많았다. 그날도 무언가로부터의 지각을 면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 기사님, OO으로 가주세요.




 목적지를 말하는 문장은 평소와 다를 데가 없었다. 무얼 더 뺄 것도 없이 평범하기만 한 이 문장에 태클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청취자 본인.




-여봐요 아가씨.

-네?

-아가씨 그러다 큰일 나.

-..저요? 저 왜요?

-기사님이 뭐야 기사님이. 사장님이라고 해야지.




 왓? 팔든? 여기 혹시 외국인가. 한국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되는 건 왜지, 와이? 부지 중에 그에게 무례하게 군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고 있었지만 그러기엔 고작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고장 난 시계처럼 머리가 제자리걸음 하는 나는 아랑곳없이 그가 말을 이어갔다. 요지는, 기사님이라는 단어는 아주 기분 나쁜 단어이며,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고, 본인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이니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의 어휘 선택 실수에 대한 지적과 이에 대한 장황한 근거가 계속됐지만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며 성을 내던 그 두 눈. 그게 너무 공포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차 문을 열고 굴러서라도 내리고 싶었다. 별다른 불상사(이미 불상사가 일어났다만) 없이 목적지에 내려준 그에게 값을 지불하고 내렸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미용실이랑 헬스장에서만 돈 내고 혼나는 건 줄 알았더니.



 덕분이라 해야 할지. 그날의 트라우마로 다시는 택시 운전을 업으로 하는 분들을 '기사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따금씩 다른 택시 사장님을 붙잡고, 혹시 정말로 이 세계에선 기사님은 무례한 단어인 건가요, 묻고 싶기도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엔 쫄보의 심장은 빠운스 빠운스. 일련의 사건 이후, 나에게 택시 사장님들은 꽤 어려운 존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택시 사랑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건 삼십 대가 된 지금까지도 게으름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렴,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데. 여든까지는 게으름을 지켜내리라.


 서울로 이사 오고 나서는 그야말로 택시의 신세계가 열렸다. 서울에서 놀다 집으로 들어가는데 택시를 타도 괜찮은 금액이라니! 야근이라도 할라 치면 기본 4만 원은 나오는 본가에 살 때와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운 좋게 얻은 무료표로 본 뮤지컬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했고, 감동에 취해 건물 밖을 나왔을 땐 막차가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취객들이 굴러다니는 지하철을 한 시간을 걸려 타느니, 택시를 타고 20분 만에 집에 들어가는 게 더 낫지. 이보다 합리적인 소비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택시를 잡았다. 하여간에 돈 쓰는데 사연은 넘쳐나고 핑계는 무수하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으로 가주세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목적지를 말하곤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흠, 근데 나 아까 ○○이라고 말 잘했나. 설마 △△로 가시진 않겠지. 이름이 비슷해 간혹 가다 헷갈려하는 분들은 정확한 목적지를 확인하고자 되묻기도 했지만 어딘가 과묵한 이번 사장님은 성실하게 차를 출발시키기만 했다. 불안한 기운이 발목을 타고 명치께까지 올라왔다. 다시 물어봐야 하나. 그러나 목적지를 말한 지 3분이나 지난 시점에서 '근데 제가 아까 ○○이라고 했는데, △△으로 알아들으신 건 아니죠?'라고 물어보기엔 쫄보의 심장은 한없이 쫄보였다. 설마는 접어두고 다시 핸드폰에 집중했다. 오늘 본 공연 넘버와 배우에 대해 메신저로 떠드는 사이 아까의 걱정은 간 데 없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차가 요동쳤다. 휘청이는 차와 함께 몸도 휘청, 창문에 머리까지 박았다. 뭐야 무슨 일 이래, 놀라기도 전에 사장님의 입이 먼저 터졌다.




- 아니, 시이발 저 호로새끼가 뒤질라고 환장을 했나.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시각, 서울의 도로 위, 낯선 택시 안, 그리고 욕.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는 그 '호로새끼'를 향해 사장님은 기계처럼 욕을 쏟아냈다. 국수 기계에서 국수를 뽑아내는 것 마냥 시원시원한 된소리에, 나는 그가 욕 기능 자격증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시발소리가 5분 정도 이어지자 다른 차원의 공포가 엄습했다. 문장이 향하고 있는 대상이 내가 아님에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니 사장님, 그 시발시발 좀 작작하시고 제발 운전에 집중 좀 하세요, 예? 속으로 빈 간절한 소원이 닿았는지, 아니면 5분 정도면 야밤의 난폭 운전자에 대한 응징이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드디어 찾아온 평화. 이대로 집에만 가면 됐다, 이대로만. 그러나 육감은 왜 이럴 때만 더럽게 잘 맞는 것인지. 직진만 하면 몇 분 안에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 차는 갑작스레 우회전을 했다. 이대로 가면 △△으로 가는 게 확실했다. 아 망했어요..망했습니다.. 아무리 쫄보라도 이제는 얘기를 해야만 했다.




- 저, 그, 사장님?

- 예?

- 혹시..△△로 가시는 거 같은데, 저 ○○으로 가자고 말씀드렸거든요.. 아까..

- 잉? △△이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아뇨, ○○이라고. 하하, 제가 말을 좀 애매하게 했죠? 가끔 헷갈리는 분들 계시더라구요. 하하하.




 구석에 몰리면 말이 많아지는 성격은 굳이 안 해도 될 문장들을 장황하게 늘어놨다. 정작 들어야 할 상대는 당황으로 얼룩진 뒷모습으로 운전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20분 만에 집에 들어가려던 내 계획 안녕. 차를 돌리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미터기의 숫자도 잘도 올라갔다. 그는 '아니 내가 귀가 먹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랬지'하고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올라가는 숫자에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싫은 소리를 입 밖으로 냈다간 저 입에서 무슨 욕이 뽑아져 나올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다물었다. 목이 탔다. 예상보다 5분 정도 늦어진 시간.


 아.. 이천 원 정도 더 나왔네. 끼어든 차를 원망했다가, 목적지를 애초에 애매하게 말한 나를 원망했다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사장님을 원망해 봤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아무리 그래도 운전자 잘못도 어느 정도 있는 거 아닌가. 겉치레로라도 미안하다 하심 좀 좋아. 하여간 우리나라 택시 사장님들이란. 심술궂은 마음이 툭 불거졌지만, 택시에서 살아 내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나운 일진을 뒤로하고 결제를 한 뒤 부리나케 내리려고 했다. 발목을 잡힌 건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 저기 손님.

- 네?

- 이거 가져가세요.




 그리고 콘솔 박스에서 그가 꺼내 든 건 천 원짜리 두장이었다. 나는 멍청한 표정이었을지, 애매한 표정이었을지를 지으며 앞 좌석에서 넘어온 꼬깃한 종이를 쳐다봤다.




-더 나온 요금인데 받아요. 아이고, 밤도 늦었는데 미안해요.




 조심히, 얼른 집에 들어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사장님은 사라졌다. 손에 들린 이천 원이 어색했다. 매번 카드만 쓰다가 오랜만에 현금을 만져서일까. 생각도 못한 거스름돈을 받아서일까. 국수처럼 쏟아지던 욕과 미안함이 담긴 표정이 지폐 두 장 위에 겹쳐 올랐다. 그게 꼭 어릴 적 부모님께 받았던 용돈 같기도 한 건 마지막 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주지 않았어도 되었을 파란색 지폐 두 장.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가지런히 지폐를 올려두었다. 당분간은 이 이천 원을 쓰지 못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일이라는 사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