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에서 애플 펜슬을 잃어버렸다.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었는지는 나만 알아서 속 터진다. 아이패드에 펜슬을 부착해두고 충전을 하느라 잠시 탁자 위에 올려뒀었는데 그게 어쩌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구, 깨졌나 어쨌나 하면서 집어 올리고 났더니 웬걸. 펜슬이 사라졌다. 30분 간 방안을 뒤졌는데 벌써 몇 주 째 펜슬을 찾지 못했다. 이 얘기를 주변 친구들한테 하니 놀라지도 않는다. 어엉, 너라면 그럴 수 있지. 너가 너 했네. 잃어버린 물건보다 어째 그 반응들이 좀 더 어이없는 것도 같다.
살면서 4개의 지갑과 2장의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다. 여행을 가면 같이 동행한 사람들은 내게 숙소 열쇠를 맡기지 않는다. 집이나 회사에 카드를 두고와 역까지 갔다 돌아오는 건 분기마다 한 번씩은 있는 일. 이렇게 덤벙거리고 부주의한 사람이 광고회사에서 AE를 하고 있다니. 프로젝트의 전반을 가장 면밀히 들여다보고 챙겨야 하는 살림꾼 같은 역할을 내가 6년째 해내고 있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건 나를 조이는 긴장감이나 빽빽한 스케줄러들만은 아닐 거다. 고작 그런 것들로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단점 혹은 약점이 있다.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을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일하는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옆자리에 있는 동료들이라는 걸 나는 오랜 시간을 거쳐 알았다. 지금보다 더 저 연차일 때는 어떤 프로젝트가 잘 굴러가는 건 특정 인물 한 명의 뛰어난 스킬이나 능력치 덕분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에는 언제나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종종 상을 받거나, 아웃풋이 훌륭한 캠페인들의 공로를 그 한 명 플레이어의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닮고 싶다고 생각하며 흠모하고 존경했다.
그때보다는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난 지금, 뛰어난 한 사람 덕분에 성공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는 것을 안다. 때때로 실수하고 놓치는 것이 많은 나와 다르게 일을 순서대로 파악하고 정리해주는 동료나 작은 디테일을 보는 것에 강한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나를 프로답게 만들어주는 근원이다. 내가 놓친 것들을 그들이 지적할 때면 잠시 숨을 고른다. 해야 할 일의 순서를 다시 들여다보고 우선순위를 파악한다. 한숨 돌린 만큼 다시 집중해서 일의 매듭을 풀어내간다. 반대로 나의 어떠한 장점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일터에서는 이런 유기적인 기적이 매일 일어난다.
세상엔 수많은 직업이 있다. 제 아무리 혼자 일하는 편이 많은 프리랜서라고 할 지라도 반드시 어느 순간에는 타인과 일하는 상황이 온다. 누구도 혼자 일할 순 없다. 일터란 누군가의 단점이 누군가의 장점으로 보완되는 매일의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 오늘도 어김없이. 지지고 볶으며 일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곁에 있었다. 덤벙거림이 일상인 사람을 제몫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