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쉬운 거 하나 없다는 말은 진리였음을
회사를 옮기고 한 달이 지났다. 이직은 또 처음인지라..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자극을 기록해 두려고 요즘 일기를 쓰는 중이다. 매일은 아니고 진짜 가끔씩. 그걸 읽다 보면 '얘 혹시 분노조절장애 있나' 걱정됐다가도 '서른 훌쩍 남은 성인 걱정해서 워따 쓰나' 싶어서 냅둔다.
블라인드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 이직 원래 쉽지 않다고,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린 다시 한몫 해낼 거라고. 힘든 게 당연하다는 말, 나도 그랬다는 경험담,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란 응원까지. 삼박자 완벽한 응원이었다. 모르는 이에게 이런 위로를 받는다.
맞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란 게 참 재밌다. 의미 없이 흐르는 것 같지만 무언갈 열심히 바꾸고 있다. 사원증은 처음이라 사무실 문도 제대로 못 열던 게 한 달새 선배들과 마시는 모닝커피가 당연해진 것처럼, 부지런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는 나는 변하고 또 적응한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조직에 스며드는 데에 에너지를 다 쏟느라 잘하던 일도 못 하게 만드는 게 이직인 것 같다. 익숙하던 사람이 옷 좀 까리하게 입었다고 생전 첨 보는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듯이. 속내는 똑같으니 그대로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니까 어깨 좀 펴고 다니란 말야 짜샤! 이건 걍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
어쨌거나, 저쨌거나. 어떤 선택의 옳고 그름이란 건 죽기 전까지, 혹은 죽고 나서도 알 수 없다. 사망 후에 작품이 빛을 보는 예술가들을 떠올리면 삶의 의미는 그저 스스로가 부여해야만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요는, 지금 내가 이직을 잘한 건지 아닌지 머리 싸매고 있늘 바엔 당장 주어진 하루를 잘 꾸리는 게 맞다는 거고.
물론 (500프로의 확률로) 월요일 퇴근 후 일기에 다채로운 감정이 쓰이겠지만 1년 정도 뒤엔 '하여간 저 멍충이, 저 때도 저랬네'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내 푸념과 상념을 들어주다 영양가 없는 농담으로 위로해주는 멋진 사람들이 곁에 잔뜩 있으므로. 그러면 뭐 된 거지. 이직 2달 차, 어디 한 번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