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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석 Jan 10. 2019

비틀스의 5번째 멤버, 엡스타인을 아시나요?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가리지날 시리즈] 비틀스의 5번째 멤버,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댓글로 먹고 사는 조홍석입니다.

 

새해 첫 글이네요.

 

오늘도 음악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지난해 10월 31일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어언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호평 속에 1천만명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네요.

 


이 영화 덕분에 다시 주목받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 생전 존경한 선배 가수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존 레논 (John Lennon)...

마침 <이매진 존 레논 전>이라는 전시회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네요.

 

20세기 최고의 그룹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비틀스(The Beatles)의 리더이자 반전반핵 운동의 기수였던 존 레논이 1980년 불과 40세 나이에 팬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레디는 퀸 라이브 무대에서 존 레논의 대표곡 이매진(Imagine)을 부르고, <Hot Space> 앨범에  추모곡 <Life is Real>을 수록하지요. T.T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에 앞서 존 레논을 진정 사랑하다 인생을 활활 태워버린 한 남자에 대해서는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아아, 그의 이름은 바로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 1934~1967)입니다.

 

다만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능... ^^


엡스타인 이야기에 앞서 간단히 비틀스를 소개해야 할 거 같네요.

비틀스(The Beatles)라는 그룹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만 보통은 1960년대 활동한 영국의 4인조 그룹으로 예스터데이(Yesterday)란 유명한 노래가 있다는 정도로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록의 역사에서 비틀스는 서양사에서 한순간 모든 역사가 로마로 집결되었다가 다시 퍼져 나갔듯이, 1950년대 등장한 이후 음란하다는 이유로 급격히 사그러들던 록앤롤을 부활시킨 장본인이자 다양한 실험을 통해 헤비메탈,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애시드 록 등 현재 주요 록 장르의 시초를 열어놓은 전설적인 대형그룹이었지요.

 

 

존 레논 (John Lennon),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링고 스타(Ringo Starr) 4명으로 구성된 비틀스는 1962년부터 8년간의 공식 활동 기간 동안 13개의 정규앨범을 남기며 1970년대에 등장할 대부분의 록 장르를 시도하는 놀라운 창조력을 선보였습니다.

 

이들은 영국 가수중 최초로 세계 최대 미국시장에서 성공하면서 한번 1위 하기도 힘들다는 빌보드 차트에서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차지하기도 했고, 전세계 위성 생중계로 4억명이 보는 가운데 신곡 <All You Need Is Love>를 선보였을 뿐 아니라 한 해에 무려 4개의 앨범을 발표하는 무시무시한 창작력을 과시했습니다.

 

(캐번 클럽 연주)

 

하지만 비틀스는 스타가 되기 전 6년동안 고향 리버풀과 독일 함부르크 싸구려 술집을 전전하며 하루 8시간씩 노래를 부르던 무명 인디그룹이었단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 아직 이들이 리버풀의 술집 무대에서 술주정꾼들의 욕설과 날아오는 병을 피하던 시절, 오늘의 주인공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등장합니다.

 

엡스타인은 원래 영국 리버풀의 부자집 도련님이었다고 합니다. 배우가 될 꿈을 품고 런던 왕립연극학교에 진학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아버지가 불러들여 자기네 가문이 운영하던 가구 가게 매니저 일을 시켰다네요. 그러다가 그가 예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자 아예 아들을 위해 리버풀 최대 규모의 레코드 가게 NEMS(North End Music Stores)를 열어주게 되나 오히려 록앤롤 음반이 더 잘 팔렸다고 하네요.

 

이에 엡스타인은 영국 문화의 중심지 런던에 비해 낙후한 지방 항구도시 리버풀 지역에서 활동중인 인디밴드의 레코드를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1961년 당시 그의 나이 겨우 26세... O.O

 

알려져 있는 각종 비틀스 전기에서는 한 소년이 이 가게에 비틀스 음반을 사러 왔는데 그 음반이 없어서 못 판 엡스타인이 앨범을 구하러 비틀스가 연주하던 캐번 클럽(Cavern Club)에 찾아갔다가 비틀스의 연주를 보고선 '한 눈에 뿅갔다'고 나오지만 이것은 가리지날...

 

실제론 비틀스 멤버들이 먼저 이 가게를 찾아와 자기네 자작 음반 판매를 부탁하고, 다른 그룹 앨범을 듣는 등 이미 안면이 있던 사이였고.... 동성애자이던 엡스타인은 이들 중 존 레논에 홀딱 반하고 맙니다. (존 레논도 양성애자였던 게 최근 밝혀졌죠...)

 

제갈량이 먼저 유비를 찾아갔지만, 소설<삼국연의>에서 유비가 3번이나 찾아가서 모셔온 인재로 포장한 '삼고초려' 에피소드가 더 널리 알려진 것처럼요...  문화대국들은 스토리텔링도 참 잘해요...

 

그래서 이 열혈 청년은 비틀스를 성공시키겠다고 결심해 후원자가 없던 비틀스의 매니저가 됩니다.

일단 엡스타인은 거지같던 캐번 클럽 대신 더 나은 환경의 술집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힘을 씀과 동시에

리버풀 레코드 도매상 거물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런던의 여러 레코드사에 데려가 연주를 선보이게 되지요.

 

하지만, 1962년 1월 1일 새해 새아침을 맞아 런던까지 간 엡스타인과 비틀스가 가장 먼저 찾아간 데카 레코드는 아예 처음부터 지방 촌동네 무명 밴드를 만나주려 하지 않아, 엡스타인이 간부에게 돈을 쥐어주면서 1시간만 연주를 들어보라고 설득하죠…

하지만 데카 레코드는 '이미 록밴드는 한물 간 구닥다리라 계약할 수 없다'고 걷어찹니다. 엥? 록음악이 구닥다리? O.O

지금 시점에서 보면 황당해 보이지만, 1950년대 미국에서 태동한 록 음악은 워낙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미 인기가 시들해지고 영국 등 유럽에서 뒤늦게 유행이 시작되던 상황이었죠…

비틀스가 다시 불을 붙이지 않았다면 록 음악은 이미 1960년대에 소수 매니아만 좋아하는 마이너 장르가 될 뻔 했습니다.

 

결국 이날 비틀스를 걷어 찬 데카는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악의 판단 실수 사례라고 두고두고 대차게 까이고 있습니다…

원래 회사 이름 자체가 '대'차게 '까'이자(Decca)여서 그랬더라능 =.=

 

이후 여기저기 문전박대를 당하던 엡스타인과 시골 밴드는 결국 EMI 산하Parlophone레코드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고, (지금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주적 음반사 '유니버설 레코드'에서 유통)

엡스타인은 인맥을 동원해 유명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붙여 1962년 10월 역사적인 첫 싱글<Love Me Do>을 발매합니다.

당시 드러머 '조지 베스트'랑 사이가 틀어진 세 멤버들이 요청하자,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악역을 맡아 실력이 모자란다는 핑계로 내쫓고 '링고 스타' 라는 새 멤버를 찾아주기까지 합니다…

지금에야 모든 비틀스 음악이 처음부터 대성공이었다고 쓰지만, 당시 데뷔곡은 영국차트 17위에 오르면서 '어라. 시골 밴드가 제법 인기 있네?' 라고 주목받게 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차트 진입 역시 엡스타인의 노력 때문이었어요.

엡스타인이 밴드를 알리기 위해 무려 1만장을 사재기 했거든요

(아아… 음반 사재기의 시조… 엡 선생님)

 

(생양아 시절의 비틀스)


그리고, '록음악의 생명은 반항'이라며 생양아치 스타일로 다니던 멤버들을 단정한 교복차림 더벅머리 총각으로 이미지 변신(모즈 룩)을 시키는 등 호감도를 높이는 작업을 단행합니다.

(아아… 전문 의상 코디의 시조… 엡 선생님)

 

(착한 고딩 삘로 이미지 변신…)

 

경영학 용어중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란 것이 있습니다.

초기에 소수의 얼리어답터만 알던 제품이 어떤 계기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순간을 의미하는데,

(1집 앨범 <Please Please Me>)

비틀스의 두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가 차트 1위에 오르더니, 이후 3,4번째 싱글도 7주, 6주 연속 1위에 오르게 됩니다. 1집 앨범이 30주 1위를 한 후, 바로 2집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1963년 영국은 비틀스 천하가 됩니다.

 

그러자, 용기백배 엡스타인, 모두가 반대한 미국 진출을 준비합니다.

그 전까지 영국 가수가 미국에서 성공한 적이 없었대요…

(비틀스 미국 도착)

(에드 설리번 쇼 출연)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는 비틀스의 1964년 2월 7일 첫 미쿡 방문시 케네디 공항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는데 그중 수백여명의 언니들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면서 미국 각 방송사, 신문마다 대서특필 되고, 유명 TV 토크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는 등 비틀스 열풍이 불어 닥칩니다.

이때 엡스타인이 미국 진출을 위해 뿌린 마케팅 비용이 무려 4만 달러…

이게 얼마나 큰 돈이냐면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60만 달러… 6억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쓰러진 수백명의 언니들도 다 엡스타인이 돈주고 산 알바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아… 미녀 알바 동원해 미쿡 매스컴을 농락한… 엡 선생님)

 

결국 1964년 미국에서 팔린 음반 중 60%가 비틀스였다고 하죠… O.O

비틀스가 성공하면서 이후 롤링 스톤즈 등 영국 밴드들이 미국에 진출하는 '영국 침략(British Invasion)'이 시작됩니다.

 

앞서 소개한 비틀스 최고의 히트곡 <Yesterday>은 인기가 최절정이던 1965년에 발표되는데…

폴 매카트니가 당초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에 <Scrambled Egg>라고 가사를 붙였지만 엡스타인이 마음에 안든다고 지적해 이 제목으로 고쳤다고 해요.

(아아… 곡 이름도 막 바꾸시는 마이더스의 손… 엡 선생님)

 

(우리 훈장 받았쪄염…^o^)

 

그리하야… 1965년 영국 정부는 양키들에게서 달러를 박박 벌어 국가경제를 회생시킨 네 청년에게 MBE 훈장을 수여하게 됩니다. 당시 연예인으로선 첫 영광이었다고 하지만, 일부 MBE 훈장 보유자가 '저런 애들이랑 동급이라니!'하며 반납하며 항의할 정도로 화제가 되지요.

(방탄소년단 훈장의 원조... 비틀스)

 

(셰어 스타디움 공연)

 

미국 뉴욕 셰어 스타디움 공연에 5만6천여명이 몰려와 당시 최다 관객 공연으로 기록되는 등 라이브 공연으로도 떼돈을 벌었지만, 멤버들은 공연을 더 이상 안하겠다며 슬슬 엡스타인에게 싫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뭐 4년간 앨범 5장 발매, 1400회 라이브 공연, 영화도 2편이나 찍었으니 살인적인 스케쥴이긴 했지요…

 

당시 공연 관련 에피소드도 많은데요

아시아 투어 당시 일본은 "공연 전 야스쿠니 신사를 먼저 참배하라니뽄, 우리는 얼굴에 철판 깔았데스"라고 하는 통에 엡스타인과 비틀스 멤버들이 거부합니다.

쯧... 일본 넘들은 예나 지금이나… 게다가 엡스타인은 유태계여서 전쟁범죄에 더 강한 비판의식이 있었지요.

필리핀에선 그 유명하신 구두 덕후… 마르코스 대통령의 영부인 이멜다 여사가 "아침을 같이 먹자필리피노~"라고 초대했는데 멤버들이 "아 귀찮아. 싫어요. 엡 선생님이 좀 짤라주세요"라고 해서 엡스타인이 거절했다가 성난 필리핀 시민들에게서 머리카락을 뜯기며 탈출하는 사태도 생깁니다.

'왜 하필 아시아 투어 국가가 필리핀이냐' 싶겠지만 1960년대엔 아시아에서 필리핀이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어요... =.=

 

그 와중에 리더 존 레논이 "비틀스가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미국 남부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앨범을 불태우며 불매운동을 벌이자, 언론 역보도 막고, 왜곡 보도한 잡지는 고소를 하는 등 위기대응까지 나서서 하게 됩니다.

결국 앨범을 불태웠던 사람들이 훗날 후회하면서 다시 앨범을 사게 되어 매출이2배 늘었다는 훈훈한 결말이었다지만…

(아아… 위기대응 PR 전문가이기도 하신 엡 선생님…)

 

이후 비틀스는 공연 대신 앨범에 집중하면서 아이돌 스타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되어

<말랑말랑 정신(Rubber Soul)>을 시작으로

<연발 권총(Revolver)>,


<페퍼 상사의 외로워요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앨범명 없음 (No Title : White Album)>

<아빠의 길^^(Abbey Road)>

<냅둬라 (Let It Be)>같은 걸작 앨범을 연달아 발표합니다.

 

이에 자기 레코드 가게 이름을 딴 <NEMS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려 비지스, 지미 헨드릭스, 크림과 계약하는 등 잘 나가던 엡스타인은 정작 비틀스 멤버들에게 소외되기 시작하면서 위기감과 고독으로 인해 마약과 술에 찌들기 시작했지만…

(아아.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선구자이신 엡 선생님…)


비틀스 멤버들은 명상가 '마하라시'의 사상에 경도되어 엡스타인만 남겨놓고 인도로 슝~ 날아갑니다.

(사기꾼과 순진한 어린 양...)

 

이에 더 이상 매니저 계약을 연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완전히 상심한 엡스타인은'아아 존… 나한테 이러면 안돼애애애~'라고 한탄하며 과도한 수면제 복용과 마약 복용 후유증으로 1967년 8월 27일 급사하게 되니…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2세… T.T

(그러고 보니 팬픽 소설에도 영감을 주신 엡 선생님…)

 

그의 마지막 유언은 "<페퍼 상사의 외로워요 클럽 밴드> 앨범을 팔 때는 반드시 종이 포장지를 싸서 앨범 표지가 안보이게 해라. 팬들이 놀라서 돌아서지 않게…"였다고 해요…

(아아… 마지막 순간까지 언박싱 디자인 고민하신 엡 선생님… T.T)

 

그가 죽고 난 후 멤버들은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흔들리게 됩니다.

리더 존 레논은 부인 신시아와 이혼한 후 일본 출신 예술가 오노 요코를 만나면서 밴드 활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게 되고

(그 덕에 폴이 존 레논 아들 줄리안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Hey Jude>라는 명곡이 탄생하지만…)

주도권을 잡은 폴 매카트니는 야심차게 <애플 레코드>를 설립하고 경영하지만 엡스타인 같은 경영 능력이 없다보니 사업부진에 빠지게 되지요.

이 당시 고민에 빠진 폴이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서 들은 충고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가

<Let It Go>의 선배, <Let It Be>에요.
'냅둬라… 냅둬라… 냅둬라… 냅둬라… 엄마의 지혜로운 말씀… 냅둬라...'

일부에선 가사속 Mother Mary를 '성모 마리아'로 번역하던데, 실제 폴 엄마 이름이 Mary에요… =.=

게다가 조지 해리슨은 "왜 내 노래는 싱글 커트 안 해주고 존, 폴 두 형아들만 저작권 버냐?"고 삐치고

링고 스타는 "나도 곡 쓸 줄 아는데... 킁" 이러면서 갈등이 깊어져 결국 1969년, 8년이라는 짧지만 거대한 행보를 한 비틀스는 해체하게 됩니다.

 

PR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로서는 엡스타인의 애환이 남 일 같지가 않네요…

영업도 뛰고 (데뷔 싱글 1만장 사재기 신공…)

마케팅도 하고 (의상 코디하기, 알바 풀어서 쌩쇼하기, 포장디자인 연구하기 등등)

홍보도 하면서 (TV 출연 섭외,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한 레논 역보도 대응…)

그리 노력을 했건만… 멤버들은 지들이 원래 잘나서 그런 줄로만 알다가 그가 사망하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된 거지요…

거 있을 때 잘 좀 지내지… 왜 엡 형님 놔두고 너네끼리 놀러 가서 결국 이 지경을… T.T

 

어째 쓰다 보니 비틀스 멤버들을 디스한 거 같지만…

4명 모두 작사/작곡을 하고 이후 모두 빌보드 1위곡을 탄생시키는 등 퀸보다 10년 앞서 사기성 캐릭터가 뭉쳤던 위대한 밴드를 우리에게 알려준 한 젊은 열혈 음악 덕후의 스토리는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자. 이제 비틀스 노래가 궁금하지 않나요?


제가 권해드리는 비틀스 노래 입문 Tip


1. 완전 초보 : 일단 글에서 소개한 3대 명곡 <Yesterday>,<Hey Jude>, <Let It Be>을 들어보자

2. 입문기 : 미국과 영국차트에서 1등한 노래 모음 앨범 <1>을 들어보자.

3. 탐색기 : <1>이 초중반 히트곡 위주이니 <Red>,<Blue> 베스트 앨범도 들어보자

4. 감상기 : <Rubber Soul>이후 걸작 음반들을 죄다 들어보자

5. 팬기 : <Rubber Soul>이전 초기 음반도 다 들어보자

6. 매니아기 : 희귀곡 모음 <Anthology 1,2,3>, 태양의 서커스 비틀스공연OST <Love>등 관련 음반 들어보자

7. 덕후기 : 비틀즈 데뷔 전 음악, 비틀즈 관련 상품도 구해보자


이상 비틀스 멤버 디스해 놓고 노래 입문하라고 하는 괴상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요즘 쓰는 글들은 아마도 여름쯤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3 - 언어/예술 편>으로 찾아뵐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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