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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41.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나이를 먹는 건

닫히는 문보다

다른 문이 하나 더 열리는 일에 가깝다.


외로움도 그렇다.

떠난 사람보다

빈자리를 스치는 바람이 오래 남는다.


가을엔 떨어지고

겨울엔 쌓인다.

끝처럼 보여도

나무는 앙상한 채로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이 겨울 같아도

이건 멈춤이지 소멸은 아니다.


그래서 하루에 조금씩만 한다.

걷고, 비우고,

나를 챙기는 정도.

그걸로도 뿌리는 두터워진다.


겨울은 원래 느리다.

나는 조용히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이 변화는 끝이 아니다.

봄의 초입이다.

나는 조금씩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25.12.6

스승님의 강의에서 배운 것은 하나였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글쓰기는 직설을 피하고, 자연과 사물, 시간 같은 주변의 것들을 빌려 감정을 우회하는 일이라는 것.


슬프다, 외롭다, 원망스럽다

그 말들을 바로 꺼내 두는 대신

햇빛의 각도, 창가에 쌓인 먼지,

느리게 움직이는 그림자,

계절의 냄새 같은 것들에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적으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은 그 결을 느낄 수 있고,

작가는 감정의 기록자가 아니라

감성을 선물하는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독자가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스승님의 말에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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