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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un 10. 2024

37.책을 읽지 않는 사회.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방진 태도로 삶을 사는 것과 같다.

-나달리의 문장사전 '책


https://youtu.be/NiF4YnM_mbw?si=dLcflQobXSmE1I3B




책을 읽으라고는 많이 하는데, 사람 심리가 '이거 꼭 해'라고 하면 하기 싫은 게 보통이다. 더군다나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다음 이어질 작가의 말은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쉬지 않고 상상을 이어가야 하는 독서 더욱 그렇다.

어찌 보면 육체와 뇌동시 다발적으로 반복되느라 누군가에게는 피곤함이 배 되는 일.

그런데도 왜! 왜? 도대체 왜 책을 읽으라고 할까?


반대 질문을 해보자. 그럼 왜 책을 읽지 않는 걸까?

첫째. 어렵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르기 어렵고, 언제 읽어야 하는지 어렵고, 읽는 습관이 없으니 또 어렵다.)

둘째. 더 재미있는 놀거리가 많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몇 시간 동안 무한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굳이 흥미를 위한 독서는 배제할 수밖에)

셋째. 정보습득이 느리다. (인터넷 검색 창을 열어 정보 검색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는 Ai 기술을 활용하면 서론, 본론, 결론을 일목요연히 작성해 볼 수 있다.)

넷째. 시간이 없다.(도대체 책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 OECD  국가 중 출퇴근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내가 생각한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 네 가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 이외에도 바쁜 일상에, 육아, 개인의 문제 등 등 있을 수 있고.


정말, 그럴까?. 하루 한 페이지 읽을 수 있는 5분,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둔다면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동료들과의 저녁 식사시간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면 하루 한 시간 이상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 잠시 자리를 옮겨 책 장을 넘길 수도 있다.


몸이 불편하다. 시간이 없다.  육아에 정신이 없다. 는 말은 개인 상황에 따라 정도가 다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내가 속한 작가단의 수 백의 출간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터.


지체장애를 가진 작가님이 계신다. 아이 셋 다둥이 엄마 작가도 있다. 일흔을 넘긴 할머니 작가, 나이 다섯 살 꼬마 작가, 알코올 중독을 겪었던 작가 등 등. 아, 자신의 자녀가 암 환자인 작가도 있다.


이들 앞에서라면 책 읽지 않는 이유, 그저 읽기 싫어 만드는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책을 읽으면 무엇이 달라질 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몸이 건강 해질 까?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을까? 암환자의 병이 나을 수 있을까?


모두 틀렸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건 '나'다.


 지인 한 명이 있었다. 올해 나이 마흔여섯. 가족은 아내와 아이 둘. 직장도 있었고 집도 있었다.  누가 봐도 대한민국 평범한 가장의 모습.


올해로 직장 생활을 20년 차가 된 그가 갑자기 우울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에는 '몸도 건강하고, 부족할 것 없어 보이기만 하는데 무슨 우울증 이냐, 배부른 소리다.'  했다.


한참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니 무슨 말인지 공감 됐다. 지금껏 직장을 위해 일했고, 가족을 위해 출근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 서는 무엇도 한 것 같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직장일 테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이 당연할 테지만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그에게 남은 건 남을 위한 나였지,

진정한 나는 부재라는 것.


한 동한 어찌할지 몰라 방황했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직장 사람들에게 푸념도 늘어놔밨고, 퇴근 후 가족에게도 진지하게 속 마음을 털어놨다고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나는 너보다 더 힘들어'라든지 '네가 선택한 일인데  어떻게 하겠어' 식의 말 뿐이었다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현재 직장 근처의 원룸으로 이사했다.  가족과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없었다. 단지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퇴근 후 평일에는 도서관과 집을 오간다고 했다.

대신 주말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가족과 약속한 시간은 1년이었다. 지금껏 무작정 걸어온 길 보다 한 걸음 씩 고민하며 내딛는 시간은 과거 20년의 직장생활보다 더 신중하게 걸어야 했다.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독서였다. 아무것도,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에 오로지 자신과의 대화를 하고 싶어 선택한 길.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이 세상에 작가와 자신만이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앞으로도 시간이 흐를수록 다짐하는 건, 가족도 직장도 친구, 동료 모든 것이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있어야 가족도, 이 세상도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몇 년 전 알코올 중독과 공황장애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 해야 했고, 온종일 직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밀려드는 업무에 제때 밥을 못 먹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인스턴트 음식으로 풀었다. 살이 급격하게 쪘다. 체중계에는 난생처음으로 세 자리 숫자가 보였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땐 당뇨를 의심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께서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고 나 역시 이유가 있다지만 폭식, 과식으로 이어진 체중증가는 충분히 의심케 했다.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말을 할 때면 웅성 웅성 거리는 목소리가 마치 나를 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했다. 조현병라고 했다. 환각, 환청, 두통이 종일 머리를 아프게 했다.

약으로 버텼다.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해결이 안 되는 건 정신의 고통. 매일 아침잠에서 깨도 개운하지 않았다. 눈을 뜨기 싫었다. 세상이 무너졌으면 했다.


더 이상의 약 처방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관심을 돌리려 운동을 배워보기도 하고 여행도 다녀와봤다. 그때뿐이었다. 이미 떨어진 체력 탓에 운동은 재미가 없었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여행은 매력이 없었다. 오히려 노동으로 느껴졌다.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많았다. 병원에서의 추천과 직접 서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만난 수 만 명의 작가, 친하게 지내던 동료의 추천 등 등. 이 많은 일이 복합적으로 발생해 나를 책과 가깝게 만들어줬다.


흔히 책을 읽는다는 건 '글을 읽는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나에게만큼은 다르다. '독서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과의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는 시간'.

과정에서 작가에게 공감할 때면 고개를 끄덕여 주고 아파할 때면 휴지를 건네주면서 함께 걷는 것.


보잘것없어 보이던 내 삶이었다. 작가들은 더 했다. 병이 있고, 몸이 불편하고, 파산으로 인해 빚쟁이에게 쫓기던 일도 있었다.

아흔이 넘은 시 부모를 모시고 살며 새벽에 일어나 돼지 국밥을 끓여야 하는 작가도, 죽음의 때를 미리 통보받은 작가도,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짐승 같은 처우를 당했다는 작가도 은 힘들었지만

이겨내리라는 의지가 있었다. 삶에 대한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안다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손 발 오그라드는 말일 수도 있고 '에이, 그게 뭐야?' 라며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모르면 문제가 생긴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등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아니라 남의 삶을 산다. 남들이 이루어 놓은 성공, 남들이 좋아하는 일을 보며 마치 '내 삶'인 듯 착각에 빠진다.

SNS가 그렇다. 남들 인생 최고의 한 순간만을 담아 놓은 세상. 무언가에 홀린 듯 좋아요를 누른다. 낯선 사람의 일에 더욱 관심이 가 구독하기를 누른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나는 진흙탕에 점차 빠져서는 헤어나 올 수 없게 된다.


책은 어떨까?. 온전한 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독서라는 행동. 지속적으로 반복된 독서의 힘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보의 바다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취합하는 힘이 생긴다.

둘째. 삶의 속도를 조절 가능하다.

셋째. 내 삶의 방향키를 수시로 점검할 수 있다.

넷째.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이어, 내일의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 외에도 순히 글이 좋아 읽기 시작한 사람이 있는 가하면, 독서 자체 만으로도 사업화하는 사람이 있도 있다.



뉴스의 한 장면에서 시작한  글을 읽은 이들 만큼은 독서의 중요성을 느끼고 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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