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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un 10. 2024

38.한 직장에서 10년 넘도록 근무한 사람의 이야기

번 아웃,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2)

https://brunch.co.kr/@readyback85/384


이 글은 한 직장에서 10년 넘도록 근무한 사람이 겪은 번 아웃과 퇴근 후 느낀 무기력 함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30년 근속 근무를 하고 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는 선배 A와 대화를 나눌 때가 있었다. 사무실에서도 늘 밝은 표정으로 동료들을 대하는 덕분에 내가 같이 근무하는 기간에도 마음 편했다.

나 역시 그를 보며 드는 생각 30년 근속 근무라니, 대단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그랬던 그였다. 회사에서는 에너지 넘치게 일 잘하는 선배, 퇴근해서는 가정에도 충실 한 사람.


그게 문제였다. '늘 잘하는 사람'인 탓에 자신이 잘하는 것 외에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평생을 직장에 몸담고 있을 줄 알았건만 퇴임이 곧 코앞이다. 수 십 년, 자기 삶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냈건만 이제는 떠나라는 말에 무언가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아이러니 한건 늘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했건만 시간을 돌이켜 보니 정작 무엇을 최선을 다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분명 최선을 다한 삶에는 틀림없었다. 나름의 정년을 보장받으면서 일했고, 급여도 고액연봉자였다. 가족과, 아파트, 자동차도 있었다. 몇 년 전부터는 지인들과 골프도 배우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여유 있는 삶'까지 누리는 단계였다.


그런데도 그가 느끼는 감정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의 막연함과 다가오지 말았으면 하는 두려움. 매일 일을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직장인의 일과가 끝을 낸다는 생각에 다시 시동이 걸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증상, 번 아웃이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3시간을 투자하더라도 10년이 넘게 걸린다. 30년 일을 했으니, 선배는 이미 전문가의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나는 선배와 같은 직장에 근무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 넘었다. 그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그동안의 출, 퇴근을 세어봤다. 어느새 나 역시 웬만한 전문가 수준 돼있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첫 해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일하니 힘들고,  3년 차에는 알만큼 아는데 적응돼서 힘들다고. 그런데도 늘 하던 일이니까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한다고.


사실 나는 대부분의 날이 지옥 같았다. 출근하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늘 기회가 된 다면 그만두고 싶은 심정뿐었다.

 글쓰기.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것 하나가 사람을 바꿔놨다.


사람이라면 기울인 노력만큼 결과를 원한다. 때로는 그 이상의 것도 갈망하고.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실망과 좌절감에 휩 쌓일 때도 많다.

더군다나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보낸 이곳이라면 더 할 것이다. 때로는 추진하는 일이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에도, 몸이 아픈 날에도 출근과 퇴근을 반복해야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을 때가 있었을 터다.

특히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결과물에  자신이 비교대상이 될 땐 더더욱.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세상의 대부분은 결과를 원한다. 긴 시간만큼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자동으로 따라오리라는 착각까지 한다.


하지만 모든 1만 시간의 법칙을 다룬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의미가 퇴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만 시간이란 단순히 결과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악착같이 그리고 꾸준하게 단계를 밟아가며 노력한 나의 힘을 기른 것 자체가 큰 성과다.

선배 또한 당장은 자신의 결과에 의문을 품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라는 말.


이곳에서 남은 시간 동안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전혀 상관없으니 하나라도 해보라고 했다.

가령 아침 출근 전 근처 운동센터에 들러 운동을 한다던가, 점심시간 짬을 내어 책을 읽는 다던가, 아니면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루던 악기를 배우는 일도 해보라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큼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그 과정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시간이고.


매일을 빨리빨리 살아온 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천천히, 느리게였다. 늘 바쁘게 달리기만 하느라 미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 삶에 게으름을 선물하자는 의미였다.


적어도 선배에게만큼은 게으름이란 그동안 쉬지 않고 계속 사용하느라 방전되어 버린 배터리를 충전하는 다시 완충하는 시간과도 같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난 선배의 노력에 스스로가 손뼉 치며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기회니까.


때로는 근사한 여행지로 떠나지 않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가, 길 고양이에게 편의점에 들러 구입한 츄르를 건네주는 일이 더 행복할 수 있다.

돈과 시간을 들여 멀리까지 이동하느라 보지 못한 내 주변의 삶에서 얻는 기쁨이 또 오늘의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


내 나이 올해 마흔. 선배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 저렇게 되지?' 했는데 어느덧 거울 속에는 그때의 선배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나 둘 생겨난 주름과 사무직의 고질병인 허리, 목 디스크, 까지.

그래도 위안인건 최근 청년의 나이가 65세까지 늘어났다는 거다. 생애주기가 길어지니 그만큼 경제활동을 하는 나이가 늘어났다는 의미일까. 아직은 퇴사를 꿈도 꾸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1만 시간의 법칙이건 2만,3만 의 법칙이건 나는  그런 어려운 용어는 모르겠고, 단지 꾸준하게 일을 하며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설령 그 일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어도, 인정받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좋아하면 그뿐 아닌가.

나에게도 만약  번 아웃이 찾아온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길 바라본다.


'어, 왔어? 그대로 있어봐. 내가 널 위해 무얼 준비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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