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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ul 11. 2024

라디오를 듣다 보면 (하)

고독한 라디오


작년 서른 의 마지막 가을, 라디오를 구매했다. 분양받은 아파트에 혼자 지내다 티브이를 놓자니 볼 시간이 없을 것 같고, 먼지만 쌓일 것 같은 생각에 선택한 차선이었다.


늦은 밤 라디오 속 청취자가 보내는 사연을 듣다 보면 재미있다. 첫사랑의 그리움, 부모님을 여의고 느끼는 애환, 반려동물이야기, 여행지에서의 추억, 직장 동료 혹은 친구와 겪은 일 등 등. 혼자 듣고 있는 중이지만 다 같이 모여 앉아서는 차례대로 이야기하는 걸 듣는 기분까지 든다.


나도 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손을 들어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글을 썼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어? 나도 그랬는데'  하며 고개 끄덕였던 일을 상기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길거나 짧은 기억을 옮겼다.

'C 방송 '  'Y방송 '  할 것 없이 듣다가 꽂히는 문장이 떠오르면 메모지에 적어두었다가 퍼즐의 조각을 완성해서는 사연을 보냈다.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내가 듣고 있는 라디오가 고독한 이유, 짝사랑이라는 이유를 되짚어 본다면.


덕분에 글 쓰기에 낭비한 시간은 곱절이 됐다. 하루 2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쓴 날도 많다. 어릴 적 사춘기 때의 내가 겪은 열병의 마음을 어른이 되어 돌아보는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라디오 속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하며, 작가를 꿈꾸었다던가, 여행가를 꿈꾸었다던 방황까지.


지금도 옥탑방으로 이사해서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하는 일이 라디오의 전원을 켜는 일이다. 신발을 벗기 전에 한다. 어두운 현관을 피하고 싶어 센서등까지 달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라디오를 다시 찾은 이유였다.


불도 켜지지 않은 집 안에서 혼자 서 있는 동안 아무도 말을 건네주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쉬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며 말을 붙인다. 그걸 듣고 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대꾸를 해야 할 때가 많다. 그게 일과다. 현관을 통과하기 전, 하루의 먼지를 씻어 내리는 나만의 의식이다.


만약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내 의지로 혼자 살게 되거나, 세상이 큰 혼란이 발생하여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되거나 하더라도 라디오는 챙겨갈 일이다. 지금도 내 주변 어딘가에는 보이지 않는 숫자로 된 주파수가 흘러 다니고 있을 테니. 버튼 하나 누르기만 하면 고독과 세상의 중간에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으니까.



시간이 지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나는 조금은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혀 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제는 달라졌을 테니까. 세상 가운데 나의 목소리가 전달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에 나처럼 행동할 수도 있을 테니.


그럼 중학교 시절 첫사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라디오를 들었다는 말, 남들은 수능 시험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때 나는 라디오를 들었다는 자랑,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당신에게는  불행스러운 일 일수도 있다는 말을 할 테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세상은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최대한 많은 고민을 담아 보낼 것이다.


아직도 혼자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항상 함께 있었던 건 라디오였다. 요즘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동시에 글을 이어 쓴다. 그만큼 혼자라도 혼자가 아닌 것처럼 흔들리지 않을 나를 만들어 주는 비법 같은 무언가가 됐다고 해도 좋겠다.


외로움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고독이라고 했던가, 라디오는 그런 의미로 보자면 최고의 고독 비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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