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독서
김욱 작가의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읽은 적 있다. 니체, 헤세, 카프카, 융, 프로이트가 자신들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쇼펜하우어라고 말할 정도였다는데 정작 나는 관심 두지 않다가 서른아홉에 처음으로 쇼펜하우어를 만났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중요하지 않은 일이 점점 더 늘어난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자꾸 끝없이 되풀이되면서 처음에는 중요한 일들이 점차 중요하지 않게 변해간다.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103p
방금까지 일이 생각났다. 중요한 건 일을 어떻게든 끝마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부터 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지나갔고 정작 해야 하는 일은 뒤로 미루어졌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 화를 냈던 내가 부끄러웠다. 다시 컴퓨터의 초기화 버튼을 눌러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무실에 돌아가 동료에게 아침부터 인상 쓰고 험한 말을 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그럴 수도 있다며 넘어 가줬다.
마음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 작업 기록을 찾아 열어봤지만, 파일은 열리지 않았다. 이 상황을 포기하기로 했다. 다시 문서 작업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한 번 써봤다고 처음처럼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빠뜨렸었던 주요 내용이 생각나 포함 시킬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남의 성공에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져 살았다. 남보다, 혹은 남만큼이라도 살겠다는 생각에 평균이라는 기준에 어떻게든 나를 맞추어 보려 노력했다. 그 결과 실패만 맛봤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발밑에 실패가 많이 쌓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떤 건 딱딱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더해 오늘 아침 감정조절 하지 못한 내 행동도 실패로 쌓이고 있었다.
자꾸만 상황에 흔들리는 감정을 조절하기로 했다. 여러 방법을 찾은 끝에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어디에 풀어 놓을 수 없는 말과 기억을 옮기는 일이었으므로 일기나 수필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했다. 마음 편히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쓰기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쓸 방법을 택했다. 하나로 압축됐다. 스마트폰 속 메모장과 네이버 블로그 비공개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다만 글을 쓸 줄 알아도 글 쓰는 방법은 몰랐기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는 욕만 한 페이지 가득 찼다.
지금도 내 감정 쓰는 연습을 한다.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나쁜 감정에 쫓겨 있을 때도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금방 감정을 회복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나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담배나, 술의 위로에 기대하지 않았다. 필요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오로지 ‘중요한 일’에 집중했다. 흔들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게 마련이라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