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현기 6시간전

20년 만에 찾은 정답 (상)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너는 진로 희망이 이게 뭐냐!”

고 3 담임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에 반 친구들 다 있는데 큰 소리로 말했다. 학교에서 진로 희망을 조사하는 시간에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내일까지 제출하라는 압박에 못 이겨 집에 가지고 가긴 했는데 도무지 뭘 써야 할지 막막했다. 차라리 시험 문제처럼 선택지를 주고 그 안에서 ‘옳은 것을 고르시오’ 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이 경우에는 시험 주관식 문제보다 어려웠다. 겨우 몇 글자였을 뿐인데도 나에겐 버거웠다.

‘음, 이다음에 커서….’ 돈만 많이 벌었으면 했다. 사업 실패한 아버지의 작아진 어깨를 보며 자란 탓일까, 부족한 삶이 싫었다.      


스물아홉, 부모님의 지원 없이 살겠다며 ‘독립’을 외치며 나온 지 몇 년 만의 나만의 가정을 꾸렸다. 일찍 취업에 성공한 덕분이었다. 운이 좋았다. 스물둘에 지금 직장에 입사해만 20년이 다 되어 간다. 회사에서는 혹시라도 내가 같은 일만 반복하면 싫증을 낼까 싶었나 보다. 돌아보니 3년 주기로 부서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덕분인지, 그만한 용기는 없었다. 다만 그사이 삶이 흔들린 적은 많다. 결혼하고 2년이 안 되어 이혼했다. 이후 업무적인 외에는 오랫동안 사람과의 교류를 끊었다. 공황과 대인기피를 앓았다. 그러다 서른둘 이 되어서야, 지금의 내가 정신없이 서른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막막했고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반복한다고 해도 한순간, 그 일에서 지쳐 나가떨어지는 때는 온다. 바로 그때가 삶의 전환점이 되는 셈이다. 나에겐 서른셋이 그랬다. 술에 의지하다 보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남은 시간도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는 다짐 했다. 딱 올해까지만 힘들어하자고 했다. 아무런 미래 없는 삶을 살겠다고 나의 20대를 채찍질한 건 아니었으니까. 중독센터와 병원에 다니며 흔들림을 조금씩 잡아갔다. 중독은 완치가 없다는 말에 나를 다스리는 법을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를 알고 싶었다. 별 볼 일 없는 나였다. 이제 막 중독에서 벗어나 삶을 살아가겠다며 발버둥 치는 삶. 그게 나였다. 그럴수록 더 들여다봤다. 방법으로 독서와 강연을 보러 다녔다. 각자 겪은 삶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들어 보고 싶었다. 수많은 질문이 쌓이고 지워지기를 반복하자 마지막 물음표 하나가 남았다.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일까?’      


서른아홉에 얻은 질문이었다. 마침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책 뒤편에 한 줄을 남겼다. 사는 동안 또다시 흔들리더라도 금방 잡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질 수 있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