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보다는 누나가 더 잘 그렸고, 우리는 같이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는 두 남매가 온종일 잡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답답하셨는지 하루는 나를 태권도 학원에 데리고 갔다.
"얘, 운동 좀 시켜주세요." 그 후로 나는 미술 대신 태권도 운동을 해야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그림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때는 미술 시간에만 그림을 그렸다. 종종 친구들이 스케치북을 건네주며 대신 그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나는 그 대가로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라면 을 얻어먹곤 했다.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고 부모님과 상의해 미술을 전공하도록 해주고 싶어 하셨지만,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그림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림을 포기했고,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은메달을 딴 사람이 금메달을 놓쳐 아쉬워하는 것보다, 동메달을 딴 사람이 그나마 메달을 따서 다행이라 여기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을 모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책상 한편에 꽂혀 있는 오래된 4B 연필 하나, 그것은 언젠가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는 나와의 작은 약속이다. 그것이 나의 인생에서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나는 그 연필을 깎아 사용할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집으로 향한다. 점점 어두워져가는 정거장을 배경삼아 화실의 불빛은 더 환하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