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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Dec 16. 2023

5분도 안 걸리는 일을 몇 년씩 미룰 때

그런 경험이 나만 있는 건진 모르지만 꽤 많은 영역에서 몇 년씩 미뤄 온 일들이 있다. 막상 해결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5분이면 할 수 있는데 짧게는 며칠,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미루기도 한다.


오늘 4년 전쯤 일했던 방송사의 무선랜 프로그램을 삭제했다. 노트북을 켜면 로그인 여부를 묻는 그 창이 귀찮으면서도 아니오, 만 누르면 되니까 사실 엄청나게 거슬리는 건 아니었지만 몇 년이나 끌만큼 신경이 안 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오, 를 누르며 창을 사라지게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 초이지만 볼 때마다 '저걸 삭제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에너지 낭비였다. 그런 별 거 아니지만 신경을 쓰이게 하는 일들이 정말 많다.


사소하게는 커터칼이 집에 열 개쯤은 있는데 하나도 찾을 수가 없어서 아 또 사야겠구나, 생각하며 색연필과 연필을 깍지 못한다. 그것도 열흘씩 넘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심이 짧아진 연필이나 색연필이 열몇 개가 되고 나서야 커터칼을 사든 찾든 하는 것이다.




밀양에 가지고 갔던 외장하드는 아직 복원 못했다. 연결 케이블잭이라고 주문했는데 엉뚱한 게 와서 후배의 잭으로 연결해서 보니 무슨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았다. 그래도 업체에 맡기면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아직이다.


그곳에 십여 년 전 드라마 교육원을 다니며 쓴 습작들과 십 년도 넘게 쓴 방송 원고들과 결혼 전 대부분의 여행 사진이 들어가 있다.


그걸 십 년을 방치해 놓고 복원해 보자, 마음먹은 후에도 몇 개월째 미루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의 바탕화면에 깔아 둔 앱도 제 때 찾지 못해서 이리저리 화면을 넘기곤 하는데 정리해야지, 생각했지만 그 상태로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처음 정리해 보았다.


한 두 개 앱을 옮긴 적은 있는데 사용 횟수나 상황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다 정리한 건 휴대전화를 사용한 이래 처음이었다.


또 뭐가 있을까.


읽는 분들 한심하실까 봐 보태지는 않겠지만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미루기를 일상으로 하고 살았다.


도대체 왜.


일단은 계속 미뤄온 것들을 찾아내 하나씩 해결하면서 도대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의 시간도 가져봐야겠다.


그래도 오늘, 그 방송사 무선랜 프로그램을 삭제해서 너무나 속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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