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염색
"엄마, 어떻게 해? 엄마를 닮아서 나도 흰머리가 이렇게 일찍 나오면 자주 염색을 해야 하는데......"
결혼 전까지 도맡아서 제 어미의 염색을 맡아 흔쾌히 해주던 딸의 염려였다. 그리고 이어서 남편이 염색을 해주면서 귀찮다거나 힘들다는 표현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고향으로 내려온 뒤부터는 혼자서 우리 엄마처럼 염색을 해온 지 그새 6년이 넘었다.
2~3주 사이에 매번 혼자 염색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일단 전체적인 염색을 마치고 난 뒤 남편에게 확인을 해달라고 한 번씩 부탁하곤 했었는데 특별한 일이 있을 때였다. 그 외에는 혼자서 염색을 마치고 나면 제대로 염색이 되었는지 여부를 굳이 알려고도 신경쓰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새로 바꾼 미장원의 젊은 원장님이 뒤통수 염색이 잘 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어서야 그리고 머리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헤어관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염색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곧바로 나온다.
"염색을 해달라고 했어?"
"좋아, 해주지 뭐!"
"그래, 차라리 처음부터 이렇게 해주는 것이 나아. 다 해놓고 봐달라고 하면 발랐는지 안 발랐는지 구분이 쉽지 않아서 오히려 더 힘들어."
5분 남짓 기분좋게 염색을 마친 남편의 모습이 매우 흐뭇해하는 표정이다. 예전 같았으면 염색만 신경쓰느라 완전 사자머리로 온 머리를 풀어 헤쳐놓았을 텐데 이번에는 보기좋게 머리까지 빗어놓은 상태다.
"어,이번에는 사자머리가 아니네!"
"내가 누구야?!"
남편이 염색을 해주는 동안 문득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염색을 하실 때면 늘 한 켠에 비켜앉아 보자기를 둘러쓰고 혼자서 조용히 염색을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딸들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왜 한 번도 염색을 해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엄마가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왜 나서서 염색을 해드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지 맏이인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맏이인 큰언니가 엄마 염색을 해드린 적이 없으니 동생들도 생각을 못 했으리라.
이모들이 우리집에만 오시면 한결같이
"언니, 언니는 딸들이 많은데 왜 시켜먹질 않아?!" 라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실 때마다 우리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기만 하셨었다. 그런데 자식을 낳고 나이를 먹어서야 우리 엄마에게 참으로 무심하고 철이 없는 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 후 방학 때마다 친정에 내려가기만 하면 엄마 손이 가지 않도록 찾아서 집안 일을 하고 편리하게 쓰실 수 있도록 예제 모두 꺼내어 정리를 해놓았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와서 며칠 동안 몸살로 끙끙 앓는 와이프를 보고 남편은 안타까워했다.
"당신 같은 딸도 없을 거야. 친정에만 가면 자기 몸 생각하지 않고 엄마를 위해 그렇게 일하는 것을 보면 당신도 대단해."
방학 중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고, 우리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지켜보던 엄마는 노심초사 애만 태우셨다.
"너는 여기만 오면 힘들어. 그만 해라. 또 올라가서 몸살 걸린다"
이제는 우리 엄마와도 그 옛날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금 내 곁에 살아계신다면 내가 직접 예쁘게 염색도 해드리고 미장원에 모시고 가서 좋아했던 파마도 곱게 해드렸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