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깨어서 불도 켜지 않고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잠결이지만 왼쪽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을 움직였는지 순간 따끔하고 주변으로 독이 쫙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발을 들어 발가락 사이에 손을 댔는데 무엇인가 물컹 잡히는 것에 깜짝 놀라서 그대로 뿌리쳤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지네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은 따끔한 통증보다 순식간에 퍼지는 독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말로만 들었던 지네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니 한밤중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남편을 깨워야 하나?'
'119에 전화를 해야 하나?'
지네에 물려서 119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았다는 내용을 지인에게서 들었던 터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문득 내가 먹고 있는 식품 가운데 해독 제품들을 모아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주방으로 나갔다. 그리고 해독 제품들을 꺼내서 메가로 먹고 팩을 만들어서 상처 부위에 바르고 랩으로 감쌌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쉬이 올 리 만무하다. 퍼진 독으로 인한 통증으로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잠을 자는 동안 발가락의 통증이 없어져 버렸다.
어렸을 때 나는 눈다래끼를 늘 달고 살았었다. 남달리 겁도 많고 무서움이 많은 나를 위해 우리 엄마는 한밤중 깊은 잠에 빠져있는 동안 곪아서 볼록 튀어나온 눈다래끼를 해결해 주셨다. 물론 나는 엄마가 내 눈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전혀 모르는 일이었고 아침 눈 뜨고 나면 눈다래끼가 사그라진 눈을 보면서 우리 엄마의 손을 '마법의 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결혼해서도 눈다래끼가 났었다. 그 때마다 먼 길 엄마에게 내쳐 달려갈 수가 없어서 낌새가 느껴지기라도 하면 약국에 달려가서 약을 사다 먹곤 했었다. 그런데 초기 약 먹는 것을 놓친 바람에 젊었을 때 생긴 눈다래끼 흔적이 60이 다 되도록 볼록하게 남아있었다.
픽사베이
지네에게 물린 다음 날 점심 때 책상 위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지네에게 물렸던 발가락 사이의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서둘러 해독 제품을 추가로 챙겨먹고 어젯밤 남은 팩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내 발을 물었던 녀석이 지네였다는 것을 끈끈이에 붙어 꼼짝하지 않고 있는 지네를 보고 알았다.
출처 픽사베이
산 밑 전원주택이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벌레와 곤충들과는 친구처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7년 넘게 살고 있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있다. 다리가 많이 달린 그리마(그림자), 바퀴벌레(산), 지네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질겁을 하게 되고 놀란다.
특히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싱크대에 가면 도망가지 못하고 싱크에 안에서 맴돌고 있는 그리마와 한 번씩 나타나는 산 바퀴벌레, 구석에서 지네를 보게 되면 소리 높여 남편을 부르곤 했으나 이제는 내가 화장지로 급할 때는 실내화로 냅다 때려 잡는다. 그런데 지네는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생각만 해도 지레 겁부터 난다.
"여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알아?"
"지네잖아. 그럼 어젯밤에 물었다는 그 지네가 이 놈이야?"
"맞아. 틀림없어. 처음 물렸지만 독이 순간 퍼지는 느낌이 영낙없는 지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얘였잖아."
시간상으로 봐서 아직 죽지 않았을 거라며 끈끈이를 들어 지네를 살짝 건들자 남편의 생각대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남편이 끈끈이를 가지고 밖으로 나간 뒤 나는 또 다음에 나타날지 모르는 지네를 잡기 위한 방법을 서둘러 유튜브 검색을 했다.
목재로 예쁘게 집을 지은 근처의 지인 언니는 우리보다 앞서 귀촌해서 블루베리 등 여러가지 과일과 밭작물로 대농을 하고 있다. 목재로 집을 지어서 한 번씩 집안으로 지네가 들어오는 것으로도 초비상인데 한밤중 침대에서 지네와 씨름을 벌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레 겁을 먹었었다.
우리보다 먼저 귀촌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건축 자재가 무엇이든 전원주택에 살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지네라고 한다. 시숙님께서 특별히 냉난방에 신경써서 콘크리트와 벽돌 사이에 단열재를 넣어 다른 집보다 벽이 두텁다는데도 화장실에서 3번째 발견한 지네이니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지네 퇴치를 위한 유튜브 영상을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쌀을 관리 못해서 생긴 나방 때문에 인터넷에서 대량 구매해 둔 끈끈이를 집안 여기저기 놓아둔 덕분에 잡힌 지네를 보고 안방 화장실 문을 중심으로 끈끈이를 쭉 깔아두었다. 그리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던 이유는 언제든 나타나기만 하면 꼼짝없이 잡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네가 잡혔던 쌀나방 끈끈이
지네에 물려서 대처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지인들이 매우 신기해한다. 그러면서도 지네에 물리고 어떻게 건강기능식품으로 좋아질 수 있느냐며 말이 안된다고들 한다. 그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가능했다. 두 번 먹고 팩으로 바르고 이후 괜찮아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