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4번째 교체되어서 들어간 9월 말, 쉬는 시간이면 많은 아이들이 번갈아 나와서 형찬이에 대해 이르느라 정신들이 없다. 친구들은 사과받고 싶다지만 사과는 커녕 남탓만 하고 이유만 늘어놓는 형찬이다.
쉬는 시간이면 일그러진 표정으로 날다람쥐 뛰어다니듯 복도로 교실로 옆 도서관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영낙없는 무법자다. 복도에서는 슬라이딩을 하느라 이미 구멍난 바지를 입고 다녔고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는 도서관 출입금지를 받은 상태인데도 전혀 아랑곳없단다.
출처 : 픽사베이
어디 그 뿐인가. 화장실에서 복도에서 교실에서의 고성은 형찬이 목소리였고 잔뜩 구겨진 모습으로 얌전히 걸려 있는 친구의 가방을 애궂게 발로 차고 다닐 뿐 아니라 친구를 때리고 상대의 엄마를 들먹이며 욕하는 것은 다반사란다.
쉬는 시간과 달리 수업시간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새로 들어온 선생님에 대한 탐색기간이었는지 일주일이 지나자 돌변한 모습이다. 친구들은 그 모습이 본색이라며 수업시간 삐딱하게 앉아서 친구 말에 꼬리를 물거나 불필요한 유아 같은 소리를 수시로 내는데도 친구들은 익숙한 듯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반면 분명 형찬이의 아닌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친구들의 웃고 반응하는 모습에서 형찬이도 형찬이지만 주변 친구들의 모습부터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기 마치고도 2개월을 더해서 한 아이로 인해 교실이 초토화되고 학급 친구들과 교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책없이 별일 없는 무사한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현실이고 일상으로 보였으나 내가 맡은 이상 모른체 하지는 않을 거다.
분명 바보가 아닌데도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한 아이 때문에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단호하게 결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형찬이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고 형찬이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출처 : 픽사베이
쉬는 시간 잔뜩 화가 난 여학생이 씩씩거리며 나와서
"선생님, 형찬이가 제 가방을 일부러 찼는데도 사과하라고 하니까 안해요!"라는 말을 듣고 형찬이를 불렀다. "왜요? 왜 부르는데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며 마지못해 나온 형찬이에게 친구의 말을 직접 듣게 했다. 그리고
"이 친구 말이 맞아? 일부러 가방을 찬 거야?"하고 묻자 그러잖아도 일그러진 표정이 더욱 삐딱해진다.
"일부러 찬게 맞아?"
" ......."
"일부러 찬게 맞다면 친구에게 사과해야겠다. 그렇지?"
모습을 보니 사과를 할 기색이 전혀 없다. 수업시간 종은 울렸지만 형찬이가 친구에게 사과하기 전에는 수업을 할 수 없다며 나머지 친구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했다. 앞으로 남은 더 많은 시간들을 위해서 이 상황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서로가 힘든 상황은 계속 반복될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 과정을 지혜롭게 넘겨야 했다.
"다시 한 번 말할 거야. 이 친구에게 사과해!"
"........"
"좋아. 사과를 하지 않겠다면 엄마에게 이 상황을 말씀드리고 선생님은 형찬이 같은 친구와 함께 공부할 수 없으니 데려가시라고 말씀드릴 거야. 괜찮아?"라는 말에 의외로 형찬이의 반응이 빠르다. 퉁명스런 말투로
"왜, 엄마한테 전화하는데요?"
엄마에 대한 아이의 반응을 보니 이 아이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방향이 잡혔다. 그래서 단호하게
"엄마 전화번호 말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친구들을 힘들게 하고 수업시간 방해하는 친구와는 선생님이 함께 공부할 수 없어.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드려서 데리고 가시라고 말씀드리려는 거야."
"엄마 전화번호 모르는데요."
"엄마 전화번호는 교무실에 전화하면 알 수 있어. 엄마에게 전화드리기 전에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물어볼 거야. 친구에게 사과할 거야 아니면 엄마에게 전화 드릴까?"
"사과할래요."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하겠단다. 그런데 성의없이, 대강,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습이었지만 한단계 발전한 모습이라는 생각에 자리로 들여보냈다. 형찬이를 위한 무기를 발견했고 형찬이의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천천히 한 걸음부터 하나씩 달라지면 되는 일이다.
이후 사건이 생길 때마다 형찬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지만 형찬이를 위한 든든한 엄마가 계셨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형찬이의 모습과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도 느꼈을까?
그동안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어왔던 소중한 형찬이와 친구들을 위해서 더 이상은 바보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아니야!"
"안돼!"
출처 : 픽사베이 NO! NO!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가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띄자 주변 선생님들 가운데
"형찬이가 달라졌어요. 이젠 복도에서 보이지 않아요."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메신저로
"선생님, 형찬이가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하고 보내주신 분도 계신다.
친구들 말에 의하면 형찬이가 1학년 때부터 전교에서 유명한 아이였단다. 선생님께 심하게 반항하고 교실을 휘젖고 다녔다며 형찬이가 변한 모습을 보니 신기하단다. 형찬이가 변하니까 학급 분위기도 너무나 좋아졌다며 '칭찬해요' 코너에 형찬이를 칭찬해서 붙여주는 친구들도 생겼다.
정말 괜찮은 아이가 왜 그랬을까? 학년이 올라가면서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고 나서 스스로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형찬이로 인해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4학년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학습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저학년부터 누적된 학습부진으로 생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스스로 실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학습에 욕심이 있는 아이여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다보면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는 것은 아이의 능력이 말해준다. 시작했으니 이제부터는 시간이 답이라는 것을 우리 형찬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이쯤해서 형찬이 어머니께 문자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자 적어 보내드렸다.
"형찬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형찬이가 학습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고
급우들과도 관계가 개선되어서
학교생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칭찬해주시고 격려 부탁드립니다.
멋진 아이예요^^"
문자를 받은 형찬이 어머니에게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넘 반가운 소식이네요~
제가 형찬이에게 꼭 전해줄께요
저한테 많이 혼나기도 하는데
학교에서의 생활을 제가 볼 수가 없으니 걱정되었어요.
맘이 좀 놓이네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수석 선생님께 쓴 형찬이의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며 감사하다는 문자가 왔다.
"선생님, 어제 친구들에게서 편지 받고 마음이 찡~ 했어요. 제가 수업했던 내용들을 자세히 써 준 친구들이 많아서 '이런 걸 다 기억하고 있구나' 새삼 고마웠구요. 특히 형찬이의 긍정적인 생각이 드러난 편지를 보니 우리 선생님께서 역시나 민찬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감동적이었어요.
선생님,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감사노트에 써 있는 형찬이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서두에 시작하는 내용이
'이제서야 아빠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아빠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다."라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지만 승낙했던 형찬이가 친구들 앞에 쑥쓰러운 듯 마음이 변해서 안 하겠단다.
그동안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씨가 형찬이의 일그러진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달라진 멋진 필체처럼 웃는 모습이 돋보이는 아이로 달라졌으니 훨씬 편안해진 표정과 안정된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