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갤러리의 관계에 대하여
물어본다면 답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작가들은 갤러리와 일을 하는 걸까?
전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트페어에 참가하기 위해서? 스스로는 작품 판매가 어렵기 때문에? 험난한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반자가 필요해서?
지금처럼 다양한 SNS와 미디어 플랫폼이 존재하는 시대에는 갤러리라는 중개자가 없이 아티스트가 직접 컬렉터와 소통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올해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NFT 아트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온라인)상에서의 작품 직거래가 가능하고, 거래가 이루어질 때마다 창작가에게 로열티가 지급되어, 창작자의 권리가 한층 업그레이드 되는 것에 기여를 하고 있다.
아티스트가 컬렉터와 직접 소통하고 작품을 여러 오프라인/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직접 작품을 거래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갤러리는 필요 없는걸까? 갤러리가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갤러리는 작가와 대등한 관계의 비지니스 파트너이다. 작가는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한 작품을 창작하고, 갤러리는 작가와 작품의 브랜딩을 돕고 글로벌한 미술 시장에 널리 알리는 마케터의 역할을 한다. 또한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과 기업, 개인 컬렉터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고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갤러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협업을 하는 방법은 여느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작가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갤러리에 보내서 관계가 시작되기도 하고, 갤러리 디렉터가 대안공간, 미술관, 아트페어 등의 경로로 작가의 작업을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갤러리들은 1-3년 또는 그 이상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켜보며 전시를 함께 하고 싶은지, 나아가서 전속 관계를 맺을지 심사숙고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함께 매지니먼트와 큐레이팅을 해줄 수 있는 갤러리인지 적어도 1-2년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갤러리에서 어떤 전시를 하는지, 전속 작가들은 누구인지, 어떤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기획전을 꾸준히 하는지, 미술계 내의 평판은 어떤지 꼼꼼히 따져보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뜻이 맞는 갤러리와 파트너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전속 작가가 아닌 한 번의 초대전(기획전)을 하게 되더라도 전시 계약서는 꼭 쓰기를 권한다. 전시 일정, 작품 입고 날짜, 전시가 끝난 이후 작품을 어느 기간 동안 위탁할지 여부, 판매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작품 운송 일정, 도록이나 초대 엽서 제작 여부 등 구두로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협약서 형식으로라도 꼭 계약서를 작성하여 날인 후 갤러리와 한 부씩 나눠가지면 된다.
전속 계약을 하게 되었다면 계약서는 더욱 세밀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 전속 계약 기간은 몇년으로 할지(처음에는 1-2년으로 계약 후 갱신하는 것을 추천), 작품이 판매 되었을 때 며칠 내로 정산을 받을지(의외로 작품이 팔렸는데 꽤 오래 작품비를 못받고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있다), 전속 기간 중 개인전을 몇번할지 아트페어는 함께 참여할지 여부 등을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하면 대륙별로 또는 국가별로 하나의 갤러리와 전속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유명 작가가 미국에서는 Lehmann Maupin과 전속 계약을, 영국에서는 White Cube와 전속 계약을, 아시아에서는 국제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속 계약시 어느 범위까지 함께 협업할지 분명하게 정해두는 것이 서로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다.
물론이다.
작가와 갤러리의 관계에서 갑과 을이 존재하지 않아야한다. 둘은 각자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대등한 파트너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기대하는 점을 늘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그리고 미래에 그리고 있는 커리어에 대한 비전을 나누고 작은 변화도 서로 알리는 것이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이 글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갤러리 3 곳의 디렉터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았다. 갤러리와의 전시, 계약, 협업을 고민하는 작가님들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