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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연 Nov 01. 2022

감사하며 살기

좋은 부모 되기

"이거 빨리 옮겨야 되겠는데?"


얼마 전 남편이 나의 휴대폰에 쌓인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스윽 보더니 말한다.

이내 인터넷을 뒤져 디지털 앨범을 구매하더니, 며칠 뒤 배송되었다.

아이들 갓 태어났을 무렵부터 십 년 이상된 갖가지 일상 사진과 동영상들이 옮겨졌다.

이게 거실 한복판에서 수시로 슬라이딩되며 보이고 있는데, 집안에서 오며 가며 보이는 사진과 동영상들이

흐뭇하게 미소 짓게 만든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


고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선배가 그랬다.

아이 어릴 적 사진들을 잘 간직하며 추억을 최대한 많이 쌓아놓으라고. 왜냐하면 그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한창 공부할 나이쯤 되면 분위기 험악해질 수 있으니, 그때 진짜 그 추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릴 때는 이랬지. 하며 추억의 사진첩을 들춰내면 주위가 환기가 되면서 아이한테 받은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간다고 하더라.

그게 꼭 내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요즘 나도 주위에 미취학 아이를 키우는 후배들한테 종종 말한다.


"지금이 좋을 때야. 이때를 즐기면서 많은 추억을 저장해 놔라.

나중에 꼭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을 거니까."


그렇게 얘기하면, 그들은 지금이 한창 좋기 때문에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다.

인간은 지금의 행복이 앞으로도 쭉 변함없이 계속되리라 착각하곤 한다.

인생이란 어찌 보면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가며 동전의 양면처럼 돌아가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불행이 닥쳐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묵묵히 견디며 버텨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이 성큼 다가온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그날도 퇴근 후 문득 눈에 들어오는 디지털 앨범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힐링이 되며 므흣한 표정을 짓고 있노라니, 초등생 둘째가 얼굴을 쓰윽 들이밀며 당돌하게

말한다.


"엄마, 엄마는 성공한 인생 같아요?"

동그란 눈을 깜빡깜빡 귀여운 척 얘기한다.


"아니, 엄마는 아직 배가 고픈데."


"아니 뭔 소리예요?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지."

아니 어디서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삼 남매를 만나요? 그게 어디 쉬운 줄 아세요?"


"너희들이 요즘 엄마 말을 잘 안 듣잖아."


"우리가 다 알아서 한다니깐요. 숙제도 학교도 학원도 운동도 다 알아서 하는데, 뭘 더 바라요?"


"그래, 똑똑하다. 유 윈!"


잠깐 딸과의 농담 따먹기. 이 아이도 앨범 속에서는 침도 흘리고 방글방글 어린 아기인데,

어느덧 자라서 엄마한테 따지고 훈계질이다.

그래도 둘째가 철이 제법 들어서 집안의 분위기 반장에 엄마 일을 가장 많이 돕는 아이다.


우연히 접한 소아정신과 의사 지나영 교수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의 저자] 칼럼이 생각난다.


"아이는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낳는 거다."


그는 수년 째 아이를 가지려고 갖은 시도와 고생을 했지만 아직도 아이가 없는 난임 상태라고 고백했다.

어찌 보면 나는 남들 시선에서는 배부른 욕심쟁이에 꼴불견일 수 있다. 심지어 부러움과 시기, 질투의 대상일 수도. 아이한테 조건 없는 사랑을 듬뿍 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그건 생각지도 못하면서

나는 내 아이들이 남들보다 더 잘, 더 많이 해주길 늘 바라고 있으니까 참으로 무식하고 부덕한 부모임을 깨닫는다. 말로는 항상 "너 있는 자체로, 그대로를 사랑해." 하면서도 아이의 행동이 나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아침 지각으로 현재 OOO는 상벌점 합계 -2점입니다."라는 중학생 큰 아이 학교 문자가 왔다.


순간 훅 올라오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킨다.

나는 아이가 살면서 약속의 중요성과 근면성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길 바라며, 에둘러 조바심 나는 마음을 전달해 본다.


"엄마는 네가 우등상보다는 개근상 받는 게 더 중요하고 행복해~ 앞으로는 약속 잘 지킬 수 있지?"


"ㅠㅠ 네~"


나는 오늘도 좋은 부모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에 감사할 줄 알고, 성실하게 책임지고 애쓰는,

사랑 넘치는 부모가 돼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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