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내가 본 것들
2024년의 12월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비현실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로 뽑힌 대통령은 국민의 목숨을 위협했고 시민들은 거리에 나서 빛을 보여주었다. 이윽고 많은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에 함부로 공감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팠다.
겨울이 깊어가기 때문일까 세상의 채도가 조금 낮아진 기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전시를 봤고, 콘서트에 갔고, 영화를 봤다. 세상의 어떤 부분이 무너지고 있는데, 나는 무언가를 보며 즐거워했다. 신나고 멋진 경험의 순간 속에서 문득문득 슬픔과 분노를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계는 생명을 얻고 생물은 박제된다. 생명과 죽음 그리고 부패에 대해 생각했다. 전시장 안에는 완전히 죽은 것도, 온전히 살아있는 것도 없다. 생명이 아닌 것을 이용해 생물을 구현하고 미생물을 아름답게 모아두었고 생명이었던 것의 부패를 전시해 두었다. 기름진 튀김이 되어버린 꽃과 박테리아와 균으로 이루어진 작품들. 낯선 이미지들은 분명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향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22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향미의 게놈지도>도 흥미로웠다.
영화 <미드 소마>도 떠올랐고 드라마 <한니발>에서 시체에 버섯 키우던(?) 에피소드도 생각났다. 방산충 연작은 <듄> 같은 SF영화가 떠올랐다.
선과 악, 삶과 죽음의 시공간적 위치성과 위계에 따라 우리는 평가를 달리한다. 자연적이고도 인위적인 조형물의 상태가 미래의 인간이 도달할 지점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우림 콘서트를 보기 몇 시간 전 제주 항공 참사의 소식을 접했다. 자우림은 오프닝 무대를 마치고 묵념의 시간을 갖도록 해주었다. 이후 이어진 무대에서도 나는 종종 눈물을 흘렸다. 절반은 울고, 절반은 신나게 뛰었다.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우림은 모든 청춘의 고민과 우울을 위로해 주고 북돋아줄 수 있는 노래들을 만들었다. 앞서 고민하고 그것을 노래한 밴드이기에 그들의 음악은 방황하는 이들에게 언제고 답을 내어줄 수 있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연애의 무상함에 대해 말한다. 사랑의 폭풍 같은 짧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영겁의 권태가 찾아온다. 마고는 아마 언제고 루를 떠났을 것이다. 마고는 중간에 끼어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지만, 나의 경우 외로움을 두려워하게 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극 중 마고와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했다. 나는 연애주의자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훼손시켰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처리하는 데 실패한 성인이 양육자의 대체품을 찾아 애인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고 집착한다. 많은 연애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체로 이러한 양상을 보인다. 대다수의 불건강한 연애는 불안정한 인간이 성욕을 기반으로 한 불안 해소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홀로 남은 마고는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2024년의 마지막 영화로 <에에올>을 선택했다.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도 역시나 ’다정함‘이 필요하다. 사실 다정함은 사회에서 언제나 부족한 자원이다. <에에올>을 보고 나면 세상이, 아니 나를 둘러싼 우주가 한층 따뜻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고, 너의 곁에 있겠다는 고백과 포옹은 우주적으로 강렬한 감동을 준다. 새해를 맞이하는 영화로도 손색없으니 안 보신 분이 아직도 계시다면 지금 보시기를.
새해 첫날은 뮤지컬 ’ 알라딘‘으로 열었다. 기대했던 만큼 볼거리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배우들의 호연으로 즐겁게 보고 왔다. 특히나 지니 역할이 정말 힘들 것 같았는데 끝까지 에너지 있게 해 주셨다. 아 그리고 사람 양탄자가 나오지 않고, ‘A Whole New World' 장면에서 양탄자의 움직임이 아쉬웠다. 이로써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그리고 뮤지컬로 ‘알라딘’을 다 보게 되었는데 추억 보정의 효과인지 몰라도 제일 애정이 가는 것은 역시 애니메이션이다.
새해라고 모든 것이 마법처럼 바뀌지는 않는다. 지구는 자신의 궤도를 따라 길을 갈 뿐이고 모든 것은 언제나 조금씩 변화한다. 내가 믿는 마법은 나의 변화뿐이다. 새해이기 때문에 변화하려는 나의 마음의 힘을 이용하려 한다. 새해의 작심삼일은 보통의 작심삼일보다 적어도 세배는 강하다. 슬픔과 분노가 일부가 된 삶 속에서 단단한 마음으로 올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