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해보지 않은 자의 후회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각자의 취향이 있다. 취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취향의 우열도 없다. 하지만 취향마다 각기 다른 넓이와 깊이, 모양과 색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넓고 얕으며 밝은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좁고 깊고 어두운 취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둘 중 누가 더 나은가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
나의 경우 취향이 좁은 편이다. 여러 분야에 넓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기 까지도 오래 걸린다.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지 못하는 나는 상대방을 서서히 알아가고 호기심에서 관심으로 관심에서 호감으로 바뀌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취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 커피의 시작은 일단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는 것이다.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쓴 것 같기도 한데, 나름의 맛이 느껴지고 아메리카노가 괜찮았다면 또 다른 프랜차이즈의 커피를 마셔본다. 이것도 괜찮으면 개인 카페에서 내려주는 드립 커피를 마셔본다. 원두를 골라본다. 이때부터 이건 어떤 맛일지 관심이 더 생긴다. 취향의 깊이라는 것은 디테일한 면에서 나의 선호도를 알고 선택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던한 성정으로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고, 옷도 입혀주는 대로 입는 까다롭지 않은 아이였다. 그때는 ‘내 것’이라고 부를만한 게 거의 없어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소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약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앞머리를 잘랐는데 너무 짧았던 것이다. 외면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짧은 앞머리를 그냥 내리고 다닐 것인가. 어떻게든 넘길 것인가. 나는 결국 핀으로 앞머리를 까버렸다. 짧은 앞머리보다 옆으로 넘겨 핀을 꼽는 게 나았던 것이다. 결국 아무리 무던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이런 사소한 선택에서 취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취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취향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일상 속에서도 된밥이냐 진밥이냐, 된장찌개냐 김치찌개냐, 짜장이냐 짬뽕이냐 선택하는 것은 취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취향이 조금 더 깊어진다면 디테일한 선택지가 생길 수도 있다. 어디 동네의 어떤 가게의 김치찌개가 어떠어떠해서 진짜 맛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취향이 한층 깊어졌다 할 수 있겠다. 취향이 넓어진다는 건 김치찌개, 된장찌개 말고도 순두부찌개, 부 대지 깨, 설렁탕 등 그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취향에 색이 생긴다는 건 이를테면 차돌 김치찌개 같은 것이다.
영화로 따지면 된장찌개냐 김치찌개냐는 선호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 동네 어떤 가게는 감독 혹은 배우 그렇다면 맛이 어떠해서 어떻게 맛있다는 영화에서 좋았던 신이 나 연출, 연기를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모든 곳에 깊이 있고 넓은 취향을 가져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는 힘들다. 나는 다만 이렇게 취향의 범위와 색을 찾아가는 것이 나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권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낯을 많이 가려서 좋아하는 분야가 넓지 않은 편이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게 된 소중한 세계들을 기꺼이 탐구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알 수 있는 일의 시작이다. 이 세계를 탐구하다 보면 이 세계를 좋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은 ‘나’인 것이다. 자신의 무엇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인생의 큰 소득이다. 나를 지탱해줄 땅 한 뼘을 당신은 발견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에 기대어 사는 것은 자유롭고도 불안하다. 마음은 영원하지 않다. 계속해서 부서지고 다시 쌓아 올려지는 무엇에 기대어 어떻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아름답고도 자유로운 불안이 곧 우리의 삶이다. 이 시한부의 마음을 애지중지 지켜나가야 한다. 그렇게 스러지 고도 끝없이 되살아나는 불사조처럼 마음은 또한 충분히 기대어 볼만한 것이기도 하다.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그것이 내가 기대어 살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