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어른'이 되기 위하여
어떤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맞서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누구의 비위도 거스르지 않기. 나는 스스로의 이런 태도를 미덕이라 여겼고, 삶의 태도로 삼았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아이의 이상적인 행동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언제나 야단맞을까 노심초사하는 아이였다.
다 커버린 후에야 내가 이른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명의 어린이 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노력은 거의 성공했고, 심지어 성인이 된 지금도 '착한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착한 아이의 늪은 생각보다 깊다. 껍데기가 바뀌어 '아이'의 모습을 잃을 뿐이지 그 속성 자체는 꽤나 끈질기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한동안 '착한 아이'의 역할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착한 아이의 특성들은 성인 여성에게도 여전히 좋은 미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남들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착한 아이'가 저절로 '착한 어른'으로 승격되지는 않았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는 권력자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어른이 되었다. 부모나 선생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하던 노력이 대상만 바뀐 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달라진 거라고는 시키는 범위의 일을 벗어나지 않는 견고한 수동성과 동시에 여러 명의 눈치를 보는 능력이 높아진 것이다.
나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는 착하다기보다 우유부단하고 답답해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태도라는 것도 깨달았다. 거절하지 않고 모든 부탁을 받아들인 뒤 행동은 하지 않는 수동 공격도 문제 중 하나였다. '착하다'는 것은 단순히 존재감이 없고, 갈등을 회피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항상 보살핌 받고,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아이의 상태에 머무르려 했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아이로 남을 수는 없다. 익숙하고 편하긴 하지만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벗어나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많지 않아도 '어른스러움'이 느껴진다. 동생이 있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주변 어른이 순수한 편이어서... 이유는 다양한데, 공통적으로 다른 조재를 보살피거나 이끌어 주고는 한다. 어른다운 태도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책임을 지고자 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어른 다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책임감이 바닥이라면 나를 책임지는 것에서 시작하자. 최소한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도록 한다. 도움을 받는 것은 좋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책임자는 나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나에서 시작해 그 반경을 조금씩 넓혀가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의 책임을 많이 만들어 보고 싶다.
정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면 확고한 본인의 기준이 있음과 동시에 열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견지한 채 타인의 의견을 듣고, 여러 각도로 고려하여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야기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며 때로는 남의 잘못까지 책임을 져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어른. 이 '선한 어른'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여기까지 깨닫는 데에도 너무 오래 걸렸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데 서투르고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거나 이끄는 것은 어렵다. 어른이 되고자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집단에서 벗어나려 하고, 다른 이의 말을 군말 없이 따르며 '을'을 자처하는 게 차라리 편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여전히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느끼고는 한다. '착한 아이'에서 벗어나기는 이제야 시작됐다.
언젠가는 '선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