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만났던 홀로코스트 피해자 중 한 명은 그 암담한 시절 그녀에게 소중했던 깡통 하나를 떠올렸다. 그 안에 보물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넣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가치 있었다. 빈 깡통이 지닌 의미처럼, 마이클이 한나를 위해서 지었던 시는 영화 속 내내 글로 보여주지도, 음성으로 읊어주지도 않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내뱉는 모든 말이 실은 소용없다는 걸 안다. 다 흘러가는 것임에. 그러나 애초에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라면 다를 것 같아. 이토록 무용한 말을 건네는 이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게 위안이고, 사랑이었다.
사랑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빈 껍데기를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같다.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빈 껍데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 형태를 일구어내고 다듬으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