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2010년작 단편 영화인 <I’m Here>은 아마 인공지능 사만다를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Her>의 시초이자 특별한 유형의 사랑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사랑을 이끌어내는 감독만의 관심과 정서를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버스 창에 기대어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쉘든’이라는 한 로봇을 비추며 시작된다. 로봇마다 생김새는 조금씩 다른데 쉘든은 전체적으로 네모난 외형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눈을 가졌다. 그런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마을 곳곳에는 인간들의 잡노동을 대신하는 로봇들이 보였고 한 교통사고 현장에는 온몸이 부서져 바닥에 널브러진 채 옴짝달싹 못하는 로봇도 보였다. 괜히 착잡한 마음을 무릅쓰고 쉘든은 자신의 직장인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마주치는 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지만 어느 누구도 (사람, 로봇 할 것 없이)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는 외롭다.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집에 들어와 텅 빈 방 안에서 그가 하는 일은 딱 하나다. 벽에 연결된 충전잭을 연결해 충전하는 것. 매일 충전을 하기 위해서라도 집을 떠날 수 없는 그는 로봇이라는 태생적 한계, 즉 이동상의 제약을 온몸으로 겪는다. 그래서 그는 자유롭지 않다. 그저 도서관의 작은 창문 밖으로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를 지그시 바라보는 게 전부일뿐이다.
그런 쉘든이 한 로봇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조금 별난 구석이 있었다. 로봇은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어느 할머니의 핀잔에도 당당하게 차를 모는 로봇 프란체스카. 쉘든은 우연히 그녀의 무리에 끼게 되면서 조금씩 그녀에게 대해 알아간다. 프란체스카는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작은 메모를 붙이고 다녔다. 메모에는 ‘I’m here’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여기서 어딘가에 붙어 ‘내가 여기 있다’라고 표방하는 이 짧은 문장은 일종의 자기 지시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충만한 가치를 지닌다. 그녀가 원했던 것도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지라도 그저 여기 있음을, 여기에 살아있음을 이 세상에 증명해 보이는 것 말이다. 로봇이라는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살아가는 것. 그녀의 꿈이었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충전기를 나눠 끼고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을 때 두 로봇이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에서도 등장한다. 쉘든은 로봇은 꿈을 꿀 수 없다고 말하고, 프란체스카는 그런 쉘든에게 우리도 충분히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들이 악몽을 꾸고 일어나 누군가에게 꿈 내용을 이것저것 공유하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대로 지어내면 된다고. 이 장면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꿈’의 중의성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잠을 잘 때 꾸는 꿈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사실 먼 훗날 이루고 싶은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로봇은 꿈을 꿀 수 없다고 믿었던 쉘든은 자유분방한 그녀로 인해 마음속에 꿈을 품게 된 것이다.
출처 : 영화 <I'm here>
쉘든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다. 그는 콘서트 데이트 도중 격하게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한쪽 팔을 잃어버린 프란체스카를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팔을 떼어 붙여준다. 그 어떤 후회나 미련도 없었다. 그 울상 짓는 표정이 이제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이후에 그녀가 다리 한쪽을 잃어버렸을 때도, 사고로 몸통을 전부 잃어버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쉘든은 그녀를 위하여 자신의 다리 한쪽을 주고, 얼굴을 뺀 나머지 몸통까지 그녀에게 전부 주고 만다. 프란체스카가 자유를 꿈꿨다면 쉘든은 그녀와의 사랑을 꿈꿨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이상, 그녀 덕분에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그의 몸이 자유롭지 않아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로봇을 주인공으로 앞세워서 몸을 자유자재로 떼어 줄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헌신하는 사랑의 표본을 시각적으로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대가 없이 몸 한쪽을 내어주어도 한 없이 기쁜 것, 나의 일부가 당신의 것이 되는 것, 그리고 나와 당신이 서로 하나가 되는 것.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 갖은 말로 복잡하게 꾸며내는 그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도 가슴 따뜻한 여운이 오랫동안 머무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