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들은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 아이들은 프랑스어를 배워요. 그리고 크면 서로 싸우죠.
출처: 영화 <프란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끝이 났지만 아직 그 자리에 공허하게 남겨진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진실과 거짓의 상관관계를 통찰력 있게 다룬 영화다. 전체적으로 흑백으로 표현되다가도 인물이 거짓말을 하거나 그 거짓말로 인해 삶 한켠에서 희망을 보았을 때 그들의 세상도 색이 입혀진다. 흑백에서 파스텔톤으로. 또 이내 흑백으로 돌아오고 마는 독특한 연출 방식이 예술적인 면에서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고, 그 흐름 자체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의 삶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이러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속 상처를 꿰매 가면서 그들의 삶을 이어갔다. 어떤 이들은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자들을 추모했고, 프랑스인들을 혐오했다. 프란츠를 잃은 아버지는 프랑스인을 치료하길 거부하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러면서도 이젠 우리의 삶을 살아가자며 위로하는 프란츠의 어머니와 크로이츠가 있었다. 반면, 안나는 매일 사랑하는 프란츠의 무덤을 찾아가며 그의 죽음을 잊지 않고자 했다. 그리고 아드리앵은 자신의 죄를 밝히고 프란츠와 그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독일까지 찾아온다. 전쟁은 끝나도 사실 끝난 게 아니었다. 그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위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출처: 영화 <프란츠>
전반부에서는 프란츠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드리앵이라는 한 남자의 숨겨진 비밀에 주목하면서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프란츠도, 아드리앵도 아닌 안나에게로 옮겨진다. 프란츠의 아버지가 안나에게 말한다. '우리가 힘들었을 때 네가 우리를 도와주었잖니. 그러니 이번엔 우리가 너를 도와줄 차례다. 이제는 너의 인생을 살아라. 그리고 행복해져라' 우울한 흑백 속 세상에서 빠져나와 안나는 빛을 찾아 떠났다. 프란츠를 잊지 않겠다던 안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드리앵과 함께할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행복해지세요.
출처: 영화 <프란츠>
하지만 그 여정에서 그녀가 본 것은 온전한 진실 그 자체였다. 초반에 아드리앵이 독일로 찾아오면서 독일인들의 상황을, 후에 안나가 프랑스를 찾아가면서 그곳의 상황을 양립하여 보여준다. 독일에서는 프랑스인을 멸시했고, 프랑스에서는 독일인을 죄인 취급한다. 기차 창으로 비친 전쟁으로 황폐화되어버린 프랑스 한 동네를 발견한 안나. 자기 나라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프랑스 탓으로 돌렸지만 사실은 두 국가의 무구한 국민들 모두가 피해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프란츠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프란츠가 여태껏 보내왔던 편지의 내용과 사뭇 다른 프랑스의 분위기를 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아드리앵과의 만남도 곧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아드리앵에게는 곧 결혼할 여자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드리앵이 자신의 연인을 죽인 자라는 사실을 비롯한 총체적인 진실을 알게 된 이는 단 한 사람, 안나뿐이었다.
출처: 영화 <프란츠>
그렇다면 온통 흑백으로 뒤덮였던 세상은 과연 거짓된 세상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까.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독일과 프랑스. 그 전쟁으로 인한 슬픔에 매몰되어 그들은 진정한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들의 마음이 편한 식으로 상대를 욕하고 끝으로 내몰면서 그게 오히려 그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프란츠 역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거짓으로 편지를 썼다.
안나는 에두아르 마네의 <자살>이라는 작품을 보며 삶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흑백으로 뒤덮인 세상은 파스텔톤으로 서서히 변한다. 그녀의 바람일 뿐이다. 아드리앵도 이 그림을 한 동안 계속 바라봤다고 말했다. 프란츠를 죽인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아드리앵의 심정이 이 그림을 통해 대변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 그림 앞에 그녀를 서게 만드는 것은 죽음을, 그리고 죽음 가까이의 고통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프란츠>
안나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거짓으로 뒤덮인 흑백 세상에서 빠져나와 바라본 진실의 무게는 그녀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무거웠다. 거짓의 정도를 떠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건 내가 가진 모든 신념과 믿음을 모두 깨부숴야 맞이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흑백에서 나온다고 그녀와 우리의 꿈이자 바람처럼 색이 입혀지진 않는다. 모든 진실을 아는 것이 우리가 삶을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진실에 조금 빗나간 거짓에 의지하는 편이 우리를 오히려 살게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