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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11. 2024

‘아직  AI가 넘볼 수 없는 배우들의 아우라’에 대하

류덕환 기획의 전시회 《NONFUNGIBLE : 대체불가능한 당신의 이야

배우의 인터뷰는 대게 그가 출연하는 작품과 캐릭터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떠나 배우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질문과 대답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그들에겐 작품에 관한 권리도 없다. 배우는 ‘선택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배우 류덕환은 ‘배우도 작가나 감독처럼 저작권을 가질 수는 없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네 명의 배우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다. 작품이 아니라 그냥 당신 자체를 인터뷰하고 싶어요, 라는 요청에 천우희, 지창욱, 류승룡, 박정민이 화답했다. 류승룡은 존경하는 선배였고 다른 세 사람은 친한 또래들이라 가능했다. 전시회를 보니 류덕환은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기획력도 뛰어난 배우였다.


인터뷰는 쿨하게 진행되었다. 천우희는 누구랑 친하냐’는 질문이 제일 싫다고 했다. 사생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대답을 함으로써 굴절되는 인간관계가 너무 뻔한데 도대체 그런 질문을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하고도 영민한 대답이었다. 점수를 먹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그에게 주어진 퍼포먼스는 얼굴과 피부에 여러 가지 숫자를 쓰고 그걸 지우는 것이었다. 류승룡은 자신의 성격을 이야기하느라 박노해의 시를 인용하기도 하고 공자가 한 말을 부드럽게 바꾸기도 했다. 스마트폰에서 바로 박노해의 시를 찾아 읽는 모습에 감탄했다.

박정민의 인터뷰는 부정적인 면으로 가득 찼다. 자신은 천하의 ‘찐따’이며 실수하거니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봐 전전긍긍하는 소심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제일 재밌고 공감도 많이 갔다. 쌍욕도 제일 많이 했는데 그게 튀지 않고 이야기 속으로 스미는 게 신기했다. 장진 감독과 데이빗 핀처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언급되는 취향도 돋보였다. 지창욱이 하고 싶은 얘기는 ‘맨 얼굴’인 것 같았다. 머리도 안 감고 매니저도 없이 혼자 온 점은 멋졌지만 인터뷰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제일 밋밋했다.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점은 참 좋았다.  


전시는 각 방마다 돌면서 배우들의 인터뷰와 퍼포먼스 필름을 보는 형식이었다. 길이가 짧아서 중간부터 보아도 내용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배우들의 솔직하고 새로운 면모와 아우라를 확인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건 류덕환이라는 배우의 기획력과 실행 능력이었다. 2년을 놀았다는(천우희 인터뷰 도중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다) 그가 그냥 놀기만 한 게 아니라 이렇게 새로운 궁리를 했다는 걸 생각하면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로써 네 배우들은 자신이 출연한 인터뷰 영상에 대한 저작권을 갖게 되었고 류덕환은 ‘기획력까지 있는 배우’라는 부캐를 얻게 되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난 사람에게 인터뷰이들과 똑같은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기에 아내와 나도 참여를 해보았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성수동 베이직 스튜디오에서 2월 18일까지 전시한다. 한 번 가보시라.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배우들도 친숙한 사람들이라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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