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테디 대디 런》
극단 마방진의 '테디 대디 런'은 제목처럼 테디베어가 나오는 연극이다. 하지만 귀여운 곰인형 속엔 마약이 들어 있다. 흥미로운 시작 아닌가. 이야기는 이렇다. 열여섯 살 윤서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아빠를 만나고 돌아가는 날인데(엄마는 미국에 있다.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다) 가기 싫어 기상 악화를 핑계로 공항에서 아파트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숙소는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고 아빠 대신 웬 소녀가 하나 방 안에 서 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빚진 돈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빚을 받으러 오기엔 너무 어려 보였다. 알고 보니 소녀는 아빠가 필리핀에서 바람피워 낳은 딸이다. 열다섯 살이고 아빠를 죽이고 싶어 한다. 세상은 이런 아이를 코피아노라고 부르는데 아무도 책임은 지지 않고 그냥 혀를 찰뿐이다.
연극은 테디라는 거물급 악당에게 납치당한 아빠를 찾으러 나선 두 소녀의 이야기다. 하나는 아빠를 구하러 달리고 다른 하나는 아빠를 죽이러 달린다는 게 좀 다를 뿐이다. 윤서는 박희정 배우가, 니나는 정다함 배우가 열연한다. 주인공의 처지와 심리를 묘사하는 지문을 모두 대사로 만들어 방백을 하게 하는 특이한 극본 형식 때문에 두 배우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두 배우 모두 외모, 액션, 딕션이 뛰어나고 대사 소화력이나 암기력도 좋다. 특히 두 소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오토바이 없이 동작 만으로 매번 그걸 만들어 내는 게 신기하고 멋졌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다른 예술에 비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는 최고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두 주연 말고도 이지현, 임진구 배우의 유들유들한 비빔밥집 사장 부부 연기 등이 큰 웃음을 자아냈다. 니나와 함께 살고 자랐던 열여덟 살 소년 텐과 멀티를 맡은 김시유 배우의 연기는 연극의 활력소 역할을 한다. 김시유 배우의 연기를 보면 연극에서 동작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게 된다. 주연은 물론 다섯 명의 배우 모두 쉴 틈 없이 110분 내내 움직이고 달리고 총도 쏜다. 배우들이 제자리걸음으로 달리는 연기를 반복할 때마다 윈드밀 위를 달리는 시지프스 생각이 났다. 어제가 첫공이었는데 큰 대사 실수도 없이 모두 성실하게 잘 해냈다. 다만 똑같은 내용이 복기되는 후반부 니나 부분은 대사 형식을 바꾸고 좀 축약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음을 조심스럽게 밝혀 본다. 2024년 2월 16일부터 2월 25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한다. 2023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이다. 나는 박희정 배우와 김시유 배우를 워낙 좋아해서 보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권해도 욕먹지 않을 연극이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