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Bea》
(*약한 스포일이 있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다. 아마도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 아무리 비루하고 고된 삶이더라도 살아 있는 게 더 낫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스무 살 때부터 8년 동안 내리 침대에 누워서만 지내는 비 같은 여성도 이런 속담에 공감할까?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게 극본을 쓴 영국의 극작가 믹 고든(Mick Gordon)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국 초연 이후 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는 이 연극을 어제 이지혜, 김세환, 강명주 출연작으로 보았다. 김세환은 역시 찌질하고 소심하고 그래서 유머러스해지는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한다. 이번엔 게이 간병인 레이 역을 맡았는데 면접 때 쭈뼛쭈뼛하는 모습부터 후반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낭독할 때 보여주는 열정적인 표정과 목소리까지 엄청난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열연했다. 타이틀 롤을 맡은 이지혜는 다소 피곤한 얼굴이었는데도 김세환이 연기를 펼치는 내내 보여주는 리액션부터 연기 엔진을 슬슬 달구더니 침대 위에서 팡팡 뛰고 노래를 부르고 레이에게 뭔가 성적인 요구를 하고 욕을 하고 웃고 울고 술을 마시는 장면들에 가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절정의 연기를 펼친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모두 상상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스무 살 첫 경험 이후 단 한 번도 성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은 물론 움직이지도 못하고 엄마나 간병인에게 몸을 맡긴 채(화장실도 못 간다) 미음만 받아먹고사는 비의 인생이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다. 이 연극에서 성을 언급하는 건 주제의식과 큰 관련이 있다. 어차피 살아야 하는 인생인데 고통뿐인 육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래서 자신의 몸에 한 번쯤은 쾌감도 선사하고 싶어 하는 비가 너무 처량하고 슬펐다.
두 배우에 비해 오소독스 한 연기를 하는 편인 캐서린 역의 강명주 배우도 리허설 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턱에 반창고를 붙인 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들의 열연에 비해 연출은 다소 소극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자유의지'라는 주제만큼은 미니멀한 무대로 잘 표현되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것보다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영위하는 게 옳다면 그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연극은 그런 묵직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3월 24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상연한다.
사족) 연극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비'라고 한 음절로 읽는 게 맞을 것 같다. 주인공 이름이 비아트리체를 줄인 비이고 별명이 벌(Bee)을 뜻하는 '붕붕이'였으니까. 굳이 '비비'라고 두 음절을 발음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표기는 어디든 '비Bea'로 되어 있어서 헷갈린다. 요즘 드라마 '살인자ㅇ난감'도 마찬가지다. 이건 웹툰일 때부터 작가가 이렇게 표기를 했고 드라마 감독과 제작진은 '살인자이응난감'또는 '살인자응난감'이라고 읽는다고 한다. 이런 게 재밌나. 잠깐은 화제가 되겠지만 브랜딩 측면에서 보면 이런 건 별 도움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