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리뷰
거짓말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걸 믿게 만드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인데 《파묘》에서 장재현 감독은 그걸 해낸다. 140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순식간에 흘러간다. 묫자리를 보러 다니는 지관인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 봉길(이도현)과 힘을 합쳐 귀신이 깨어난 무덤의 비밀을 파헤치는 영화인데 네 명 배우의 선명한 캐릭터와 연기의 합이 뛰어나 오컬트라기보다는 '오션스 일레븐' 같은 전문가 영화로서의 쾌감이 더 크다.
가장 칭찬받아야 할 사람은 김고은이다.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에게 일어를 구사하는 첫 장면부터 자신감이 넘치더니 산에 가서 돼지들을 걸어 놓고 칼을 휘두르며 굿을 할 때는 그야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준다. 김고은은 확실히 연기에 물이 올랐다. 어제 아리랑씨네센터에서 조조상영으로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아내는 "김고은, 제2의 전도연이 되지 않을까?"라는 평을 내놓았다. 전도연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는 건 다시없는 칭찬이다. 최민식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놓이게 하는 힘을 가졌다. 여기에 "나 대통령 염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최고의 조연 유해진까지 가세하니 내러티브가 더할 수 없이 쫀쫀해진다. 김고은을 돕는 젊은 무당 봉길 역의 이도현은 참신한 마스크에 '야구선수 하다가 신내림을 받은' 설득력으로 화룡점정 캐릭터가 되었다.
장재현 감독은 연출은 물론 이 영화의 시나리오까지 썼다.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5억 원짜리 굿) 점점 확장되는 세계관은 장르 영화를 많이 다루어 본 장인의 솜씨에 역사적 통찰까지 끌어들였기에 가능하다. 나는 첨단 장비들이 불을 밝히고 있는 병원 입원실에서 젊은 무당들이 의료진을 물리고 당당하게 금강경과 주문을 외는 장면을 보고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무당이 나오면 슬프거나 한 맺힌 전사(前史)가 잠깐이라도 나오기 마련인데 그게 아니라 헬스장에서 스피닝을 하다가 굿을 하러 달려가는 젊은 무당들의 활기찬 모습이 이 영화의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리뷰를 쓰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이 영화에 실망했다는 평을 쓴 사람들의 글들을 읽어보았는데 대부분 '아는 게 많아서 걱정'인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모티브를 가져왔든 무슨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다만 그 실마리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가 관건인데 이 영화는 그 부분에서 탁월했다. 잘 만들어진 거짓말의 쾌감이다. 초반 기세가 심상치 않은데 삼일절을 맞아 흥행에 불이 더 붙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 잠깐 나오는 선배 무당 김선영과 청소년 무당 김지안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잠깐이지만 그들의 진심 어린 도움과 바람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교촌 유머'도 있으니 당신도 영화를 보다가 그 부분에서 피식 웃으셨으면 좋겠다.
묫자리 : '묘자리'인지 묫자리인지 헷갈려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맞춤법에 따르면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된소리로 나는 경우 사이시옷을 넣어야 한다. ‘묫자리’는 한자어 ‘묘(墓)’와 순우리말 ‘자리’가 만나 이루어진 합성어로 [묘짜리]로 발음된다. 즉 앞말인 ‘묘’가 모음 ‘ㅛ’로 끝나면서 뒷말이 된소리인 [짜]로 발음되기 때문에 ‘묫자리’로 표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