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와 고양이와 몇 개의 거짓말》
일본 사람들은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줄 안다. 요시다 코나츠의 극본 '비와 고양이와 몇 개의 거짓말'도 그렇다. 60세 생일을 맞은 남자 후타로는 비 오는 생일날 혼자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서글픈 장면이다. 그런데 정작 후타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생일 즈음이면 늘 비가 많이 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죽은 어머니와 찾아와 생일 선물을 주고 간다. 이상한 일이다. 딸도 남자친구를 데리고 찾아와 선물을 준다.
딸의 선물은 쌀과자다. 아빠가 좋아하는 걸 골랐다고 하는데 백화점에서 급하게 산 티가 역력하다. 후타로는 딸 커플을 대접하려고 먹을 걸 찾아보았으나 집에 있는 것 역시 쌀과자뿐이다. 쌀과자를 선물 받고 다른 쌀과자를 대접한다는 게 민망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뭔가 타이밍이 어긋나고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인간관계마다 이런 '쌀과자'가 숨어 있다.
딸의 방문을 계기로 후타로는 자신의 생일마다 있었던 일들을 헤아려 본다. 이혼한 아내와 함께 나누던 대화도 생각나고 아주 어렸을 때 엄마 아빠의 모습도 기억난다. 동성 애인과 살고 있는 아들에게 갑자기 찾아갔다가 미안해하던 날도 있었다. 아내의 무릎에 올라 꾹꾹이를 하던 고양이는 갑자기 말을 할 줄 아는 고양이가 되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은 고양이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서글픈 생의 비밀을 전해준다. 당장 사노 요코 여사의 유명한 만화 <백만 번 산 고양이>가 떠오른다.
삶을 돌아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요시다 코나츠는 쓸쓸한 한 남자의 생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포착했고 ‘극단 58번 국도’의 대표 고수희 배우도 이에 동의했기에 이 극본을 번역하고 무대에 올렸다. '나옥희'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는 고수희 배우는 일본 연극인들과 협업했던 걸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의 좋은 연극들을 소개하는 극단까지 만들었는데(작년 3월에 창단했다) 희곡을 고르는 감각이 너무 뛰어나다. 이번 연극 역시 그렇다. 나옥희는 일본 이름 '나오키'의 음차 아닌가 하는 짐작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남편이기도 한 이근희 배우를 비롯한 출연진 역시 희곡의 매력을 살리는 소박하고 잔망스러운 연기로 긴 여운을 자아낸다. 대학로에 있는 극장 아트포레스트에서 3월 3일까지 상연한다. 비 온 뒤의 봄날 아침처럼 가슴이 촉촉해지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