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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9. 2024

예나 지금이나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간 세상

입센의  《욘(John)》

 

얼마 전 친한 여자 사람 친구랑 얘기를 나누다가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나이 든 후에도 딸보다 아들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그 나이에 아들만큼 자신을 좋아해 주는 젊은 남자가 없어서'라는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오늘 진짜 그런 내용을 담은 듯한 연극을 만났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욘(John)》이었다. 헨리크 입센 원작에 국내 초연이니 고선웅 연출 작품이라는 말만 듣고 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8년 간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 후 자기 집 2층에서 8년째 칩거하고 있는 욘의 집으로 어느 날 엘라가 찾아온다. 엘라는 이 집의 안주인 귀닐의 친언니다. 역시 무슨 이유에서인지 8년 만에 만나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는 자매는 욘과 귀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엘하르트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언니와 동생 둘 다 그 아이를 사랑하니 자기가 차지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들도 두 여인과 같은 생각일까. 그리고 아버지 욘은 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유일하게 가끔 찾아오는 동네 친구 폴달하고만 노는가.


연극은 야망에 불타던 한 남자를 두고 싸우던 자매가 수십 년 후 또 젊은 남자를 두고 다투는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 내어 관객을 웃긴다. 이 세상의 땅에 묻힌 광물들을 캐내 부자가 된 뒤 수상의 자리까지 오르려 했던 욘은 은행장 시절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모든 걸 잃고 날개 꺾인 칩거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16년 만에 찾아온 옛사랑과도 말이 통하지 않고 8년째 한 집에서 외면하고 살던 아내와도 철천지 원수처럼 지낸다. 세 사람이 각자 기댈 유일한 언덕은 집안의 새로운 기둥인 아들 엘하르트뿐인데 그는 유감스럽게도 이웃집의 이혼녀 빌튼 부인에게 빠져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대개의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건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입센과 고선웅은 확실한 상황 설정과 위트 있는 대사들로 증명해 낸다. 연출에 비해 연기들이 좀 빠지는 편이다. 주연 배우들의 발음과 발성이 좋지 않아 불안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어 후반부는 매우 활기차졌다. 2층에서 내려온 욘이 집으로 들어오는 아들 엘하르트를 껴안고 붙잡는 장면에서 모자가 객석으로 떨어졌고 엘하르트 역을 맡은 이승우 배우가 객석에 있는 관객에게 손을 흔들어 모자를 달라는 제스처가 많은 웃음을 주었다. 첫날이라 아쉬운 점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서울시극단 2014년 첫 번째 작품인데 오늘이 첫 공이었다. 2024년 4월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상연한다. 입센의 작품이라 겁낼 것 없다. 고선웅 연출이 아주 현대극처럼 즐겁게 만들어 놨으니까. 배우들의 연기는 더 좋아질 것이다. 오늘이 첫공이었고 원래 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니까. 상쾌하게 볼 수 있는 고전극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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