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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17. 2024

영화 '보통의 가족' 인상비평

방금 보고 들어와 쓰는 리뷰입니다


솔직히 《보통의 가족》을 고른 건 지금 보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 영화를 볼 마음을 갖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녀들의 범죄를 모티브로 한 매우 진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그랬지만 더 큰 건 출연진들이 '연기는 잘 하지만 뭔가 영화적이지 않은'  배우들이라 더 그랬다.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년 전부터 해외에서 화제가 되고 상을 받은 영화라니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서 서울에 혼자 와 있을 때 나 혼자 보자 하고 어제 아리랑씨네센터에 예매를 했다.


변호사 형 재완과 의사 재규 형제의 입장이나 가치관이 번번이 부딪히다가 각자의 아들·딸들의 범죄에서 만나 어쩔 줄 모를 때 '아, 이건 딜레마를 다룬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킬링 디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차갑고 현대적인 미장센이나 클래식하지만 충격적인 음악 등이 묘하게 그 영화와 비슷했다.


김희애는 연기를 너무 잘하지만 그래서 이상하게 싫다. 설경구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그의 '쪼'가 느껴지긴 하지만 역시 빵빵한 연기력 포텐이 터졌고 장동건도 선전했다. 의외로 카리스마가 빛난 건 수연과 홍예지였다. 나는 외국 명문대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역을 맡은 홍예지의 연기를 보면서 이 영화는 각색이 참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에서 발표한 헤르만 코흐의 장편소설 「더 디너」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영화엔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만이 갖는 어떤 '지위'에 대한 통찰이 있었고, 어떤 사회적 이슈보다도 자신의 문제가 먼저라서 정의나 도덕 같은 개념은 껌 씹는 소리로밖에 여길 수 없는 현재의 인성교육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었다.


영화는 거칠게 말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을 따를 용의가 있느냐, 아니면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평생 반성 하는 척하며 사는 게 더 낫느냐'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충격적이지만 너무 직접적이라 아쉬운 마지막 장면 뒤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을 보니 시나리오 각색에 뛰어든 작가가 다섯 명이나 되었다. 어쩐지 이야기 구성과 플롯이 좋더라니.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정림건축 김정철 서체'가 쓰였다는 자막이 나와서 반가웠다. 정림건축은 지난 6월 내 책 『읽는 기쁨』 북토크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엔 이 영화가 《베테랑 2》를 누르고 예매 1위를 차지해했다는 소식이 떴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중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골든타임은 아니더라도 지금 보는 게 좋은 타이밍이다. 나중에 OTT로 봐야지, 하고 기다리면 김도 빠지고 스토리도 분절된다. 쓰다 보니 영화 얘기보다 다른 객쩍은 얘기들이 더 많다. 인상비평이라 그렇다.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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