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작업을 쉬지 않은 덕에 뒷채가 올라갔습니다
지난주엔 보령시립도서관에서 장르소설 읽기 모임과 필사 수업, 그리고 서울 홍대 앞에서 여행작가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을 하는 글쓰기 수업 등이 수, 목, 금으로 날마다 이어지는 바람에 정말 분주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 와중에 토요일 아침엔 신사동에 가서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북토크를 했으며 낮엔 수원으로 가 김광보 연출의 연극을 한 편 보고 저녁엔 다시 미리 초대받았던 용산 지인 댁으로 가서 술과 요리를 먹고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써놓고 보니 정말 미친 일정이었구나).
경복궁역에 있는 출판사 사무실(요즘 주말 일정은 여길 빌려서 수업을 한다)에서 일요일 낮반 책 쓰기 워크숍 19기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서촌그책방'에 가서 하영남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책을 한 권씩 산 뒤(나와 아내는 안온북스에서 나온 『집이라는 소중한 세계』를 샀다) 술자리 대신 '커피 회식'을 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서촌엔 정말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나와 있었다. 겨우 찾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쓰기와 책 쓰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훗날을 기약하고 용산역으로 갔다. 아직 헌재의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정국은 어수선했고 광화문과 경복궁, 종로 거리마다 저녁 시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차에 몸을 실으니 피곤이 밀려왔다. 일요일 저녁 9시가 넘어 겨우 명천동 대보주택으로 돌아왔다. 이틀간 혼자 지낸 고양이 순자가 반가워하면서도 억울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도대체 어디 갔다 이제 오냐는 힐난이다. 우리는 '순자가 목이 다 쉬었네'라며 하하하 웃었다. 나는 월요일 오전 마감인 《기획회의》 칼럼을 써야 했지만 너무 피곤해 새벽에 일어나 쓰기로 하고 일단 메모만 해두었다. 사실 이 칼럼도 금요일이 마감이었는데 잡지사 사정 상 연재를 한 달 쉬는 바람에 날짜를 잊어 편집자에게 다급하게 일정 연기를 부탁한 글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겨우 칼럼 마감을 하고 아내와 대천동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아내가 최근 발견한 김밥집('김밥집131'이라는 곳인데 맛이 깔끔하고 가게도 깨끗하다)에서 김밥과 우동을 먹고 있는데 에어컨 기사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11시에 오겠다는 양반이 10시 반에 도착한 것이다. 얼른 계산을 하고 차를 몰아 현장으로 갔다. 이번 집엔 에어컨이 네 대가 필요하니 지금 쓰고 있는 두 대와 새로 구입할 두 대를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미리 의논하기 위해 기사님이 온 것이다. 그런데 기사님은 주문받은 에어컨이 한 대라고 했다(나중에 두 대가 맞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시작부터 꼬인 느낌이었다.
아내와 임정희 목수님, 그리고 기사님 세 명이 마루와 안방, 새로 생기는 내 방과 그 밑의 공간까지 크기와 전선의 길이까지 고려해 배치 계획을 짜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대문 쪽에서 "사람 지나다니는 길이데 대문을 없애면 되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옆집 할머니가 또 오신 것이다. 목수님이 하는 말에 의하면 하도 자주 찾아와 물어보는 바람에 대문의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고 얘기해 줬더니 '풍수지리학'을 거론하시며 대문을 없애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고 이어 기가 막힌 아내가 "네. 할머니. 잘 알겠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억지로 웃으며 대꾸를 했다. 사람이 실실 웃으며 대하니까 만만하게 보는 모양, 이라며 아내가 화를 냈더니 임정희 목수님이 아직은 화를 낼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경험상 저런 분들에게 화를 내서 마음을 건들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서라도 반드시 집수리 공사를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화를 내더라도 우선 집을 다 고치고 이사까지 마친 다음에 내는 게 낫다는 충고를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저분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전혀 상관없는 '남의 집 대문의 유무'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므로 당장은 무시하는 게 옳은 태도다. 에너지를 아끼자.
마침 11시에 예정되어 있던 '분할 측량' 기사들까지 와서 공사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지난번 ' 경계 측량' 때 뵈었던 분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했다. 분리 측량은 우리 집과 도로 사이의 경계선을 정하는 일인데 이 측량을 마치면 명목상의 주소가 하나 더 생긴다고 한다. 나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건 측량팀도 마찬가지인지 측량을 다 마친 뒤 서류에 뭐라 제목을 정해야 하는지 되려 우리에게 물었다. 아내가 "그런 건 건축사님에게 묻는 게 낫겠다"라면서 그 자리에서 백찬슬 건축사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건축사였다. '막다른 도로에 따른 도로 확보' 백찬슬 건축사가 불러준 허가 서류에 쓰인 측량 목적의 제목이었다.
측량 기사들이 돌아가고 에어컨에 대한 길고 복잡한 논의가 끝나 에어컨 기사도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주말에 쉬지 않고 일한 결과 위용을 드러낸 '신축 서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임정희 목수님은 장 반장님과 김치열 목수, 건희 씨 등이 점심을 먹으러 갔으니 이층으로 한 번 올라가 보라고 권했다(임 목수님은 다이어트 중이라 점심을 안 먹는다). 올라가서 보면 또 다르다는 것이다. 아내가 위태롭게 놓여 있는 철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더니 탄성을 질렀다. 커다란 창문 프레임을 통해 보이는 경치가 너무 시원했던 것이다. 임 목수님도 2층으로 올라와 아직 계단 자리는 허공으로 비어 있으니 발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방범창 위치 등에 대한 설명을 했다. 주말에 공사하면서 싱크대, 안방 장의 합판 무늬를 그대로 살기 위한 노력은 물론 뒷채 2층 서재의 책상 놓는 위치, 책꽂이, 방범창, 베란다까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임 목수님이 한옥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목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을 했다며 웃었고 우리는 "그건 선생 똥 아니냐"라고 놀리며 웃었다. 임 목수님은 어쨌든 그렇게 고민해서 만든 결과가 눈으로 확인될 때 행복감을 느끼다고 고백했다. 행복감으로 따지만 새 서재가 생기는 나야말로 가장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연고가 없는 보령까지 와서 많은 돈을 들여 집을 고치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하고 회의에 젖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성과가 하나씩 눈에 보일 때마다 희망이 샘솟는다.
임목수님은 보령에서 공사를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가 누구든 부정적인 말부터 하면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에어컨기사님과 정화조 청소하러 온 사장님 모두 일단 '안 된다'는 말부터 하더라는 것이다. 그걸 일일이 다 긍정적으로 설득해 내고 정밀한 공사까지 하다 보면 '똥이 맛이 없어지기도 하겠구나'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혼자 몰래 웃었다.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도시 보령에 와서 이게 뭐 하는 건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우리가 집도 짓고 뭔가 재밌는 생각도 지어서 사람들을 내려오게 하면 되지'라는 긍정적 생각으로 바꾸기 위해 또 한 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집 이름을 '와보령'이라 지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름 끝에 보령을 붙이는 게 너무 뻔하고 유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다. 가징 단순하고 직관적인 게 힘이 센 법인데 하면서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더 아이디어를 내보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후에는 아내와 동네 코인 빨래방에 가서 밀린 빨래와 이불 빨래를 했다. 아내는 빨래방에서도 평면도를 펴놓고 고민을 하고 나는 다음 주까지 추천사를 써주기로 한 소설을 꺼내 읽었다. 임 목수님이 "이제 또 돈이 필요한데, 진짜 가진 돈 없어요?'라고 물었으므로 내일은 은행에 가서 대출을 알아보기로 했다. 모자라는 돈 생각하면 금세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출이 잘 되어야 할 텐데. 대출만 원하는 만큼 무사히 받으면 일단 큰 걱정은 없다. 물론 나중에 열심히 일해서 대출금을 갚아야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니까. 일단 짓고 고치고 나서 생각하자.
*저녁에 지금 살고 있는 명천동 대보주택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계약한 대로 6월까지만 살고 이사를 나가겠습니다"라고 통보를 했다. 주인도 흔쾌히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