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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이야기를 하면 품위가 없어지려나?

사실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돈은 얼마나 드나요?"인데 말이죠

by 편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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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택을 사서 내 마음대로 고치는 일'을 벌이는 게 벌써 세 번째다. 솔직히 말하면 할 때마다 두렵고 힘들다. 아내와 나는 왜 대기업 건설사들이 이름을 걸고 지어놓은 편리하고 쾌적한 아파트라를 마다하고 마음고생· 몸고생이 뻔히 예상되는 '단독주택 수리'에 번번이 뛰어드는가. 어쩌면 이 선택은 '획일화된 자본주의의 라이프 스타일'을 거슬러 보자는 무모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요즘은 집 짓기나 집수리에 관한 책을 자주 찾아 읽는 편인데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바로 돈 액수에 대한 언급을 한사코 피하려는 저자들의 공통된 태도다.


경조사비를 낼 때도 봉투에 지폐를 넣어 액수를 가리는 게 미풍양속으로 통하는 나라이니 돈 얘기에 민감한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전체 버젯을 얘기하면 "너 돈 많구나, 새끼"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사설 그만 늘어놓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고치고 있는 보령시 대천동의 낡은 집은 5,500만 원에 구입했다. 집을 발견한 건 우연에 가까웠다. 보령에 사는 김환영 작가님 댁에 놀러 가던 날 시간이 좀 남길래 마침 가는 길에 눈에 띄는 부동산사무실에 잠깐 들어갔는데 우리 얘기를 가만히 듣던 사장님이 이 집을 소개해 준 것이다.


구도심 주택가 중간에 들어 있어서 외지지 않은 점이 좋았고 대천초등학교 근처라 치안도 마음이 놓였다. 부동산에 내놓은 가격은 6,500만 원이었고 할머니 혼자 사시다 돌아가셔서 쓰던 물건과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놀라운 건 뒤켠이었다. 대지 51평에 연 건평은 12평에 불과했기에 건물 뒤 공터가 넓은 편이었는데 거기엔 그동안 거주자가 쓰던 온갖 잡동사니는 물론 한쪽 구석엔 쓰지 않은 연탄까지 쌓여 있었다. 집수리 이전에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 같았다. 아내는 우리가 이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양 옆집과의 경계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조건을 걸어 집값을 5,500만 원까지 낮추었다. 그래도 집주인은 손해가 아닌 것이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집을 내놓은 분은 불과 몇 년 전 이 집을 2,800만 원에 구입했던 걸 확인할 수 있었다. 5,500만 원이면 많이 깎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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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에 내려와서 집을 둘러본 임정희 목수님은 "뒤쪽에 서재 건물을 세우면 집값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들 것 같다"라고 말했고 그건 우리도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집 구입까지 포함해서 1억 5천 정도를 들일 생각이었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필요한 금액은 우리의 예상을 가뿐히 넘어섰다. 일단 공사를 시작하며 임 목수님에게 가지고 있던 목돈을 입금했다(아내나 나나 세부 품목을 그때그때 챙길 능력이 없어서 우린 언제나 '턴키 방식'으로 목수님에게 일을 맡긴다). 쓰레기를 처리하고 공사에 필요한 기본 자재를 구입하는 등 공사 초기엔 큰 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번 공사는 한 팀이 아예 보령으로 내려와 두 달 정도 숙소를 정하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도 따로 1,500만 원 정도 든다.


보령 시청의 윤 과장님을 통해 소개받은 'A3건축사무소'의 백찬슬 건축사에게도 천만 원 넘게 지불해야 하므로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먼저 입금했다. 젊고 실력이 있는 데다가 지역 연고라 아는 사람도 많은 백 건축사 덕분에 증축에 필요한 각종 신고와 허가 등에 대한 든든함이 생겼다. 물론 경계측량이나 석면 처리 등엔 따로 또 돈을 지불해야 했다. 특히 이전에 잇대어 놓은 석면 지붕은 법으로 엄격하게 관리를 하는 품목이라 공사 이전 이후 모두 시청에 가서 신고를 해야 했다. 물론 석면을 실어가는 업체를 부르는 데만 250만 원이 들었다. 이밖에도 소소하게 드는 돈들이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임 목수님에게 일임했다. 그러니까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자재를 싼 것으로 쓸수록 임 목수님의 몫이 커지는데, 두 번의 공사 경험을 통해 임 목수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뭐든지 믿음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에서 일을 보고 일요일 저녁에 보령으로 내려온 우리들은 월요일 아침에 뒤쪽에 올라간 서재 건물을 보고 감동 모드에 돌입했다. 본채와 떨어져 독립된 서재라니. 더구나 여긴 '1종 근린시설'로 분류되어 작은 서점이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쓸 수도 있다. 아내와 나는 임 목수님과 장 반장님, 김치열 목수님, 건희 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말로만 고맙다고 하는 건 별로 소용이 없다. 내가 입금한 금액은 이미 바닥이 났고 이제 또 새로운 자재들을 구입해야 할 시점이니 추가 금액을 송금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주부터 돈 걱정을 하던 아내와 나는 일단 아내의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부터 들렀다. 그런데 내가 주차장에 차를 대느라 조금 늦게 들어가 보니 아내가 대출 창구에서 뭐라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그냥 나오는 것이었다.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신용대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대." 차 안에서 아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2금융권을 가보라는 은행 직원의 말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대천농협으로 갔다. 이번에도 내가 주차장에 차를 대느라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안 된대."라며 아내가 벌써 나오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일단 현장으로 가기로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방금 2500 대출받았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모바일로 신용카드회사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필요한 돈이 5천만 원 정도이니 당신도 3천만 원 정도를 카드회사 대출로 받으라고 했다. 목수님에게 전화를 해서 조금 있다가 2천 정도를 보낼 수 있다고 하니 반가운 목소리로 "당장 필요한 자재부터 사야겠네요."라고 말했다. 현장에 들러 전기 윤경만 사장님이 표시해 놓은 LED 조명 위치 등을 합의하고 나온 나도 질세라 스타벅스에서 대출을 시도했다. KB국민카드에서 5천만 원까지 가능하다고 하길래 3000만 원만 받기로 했다. 신청하자마자 제꺼덕 3천만 원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원리금 균등상환이며 6개월 거치 후 48개월 분할이다. 빨라서 좋긴 한데 이자율이 연 10.7%나 된다. 우리는 돈이 생기는 대로 이 대출부터 갚자는 당연한 소리를 하며 서로의 심란함을 위로했다.


돈 문제 말고도 크고 작은 문제는 많다. 오늘은 '파저씨(공사구간에 파를 심어 놓고 자기 땅이라 주장하는 아저씨)'로부터 촉발된 민원이 문제였다. 일산에 사는 우리 집 옆 땅 주인이 뭔가 항의를 하기 위해 내일 아침 10시에 서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시청에 민원을 넣었으니 시청 직원과 민원인이 한 팀, 건축사과 목수님 팀 그리고 건축주(우리 커플)가 한 팀이 되어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이래저래 버라이어티 한 나날들이다. 오늘은 돈에 대한 얘기를 굳이 썼다. 조지 오웰이 "돈에 침묵하는 사람일수록 돈에 지배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돈은 숨길수록 불편해진다. 품위란 액수를 감추는 데 있지 않고 그 쓰임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는 걸 믿기에 이런 기록을 남긴다. (*노파심에 말씀 드리자면 이 모든 금액은 당연히 부가세 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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